도회지에서 젊은 날들을 다 보내고 은퇴한 어떤 부부가 있다.
우리 시대엔 흔히들 그러했듯 부모님이 손톱 다 닳도록 땅을 헤집어
교육 시킨 덕분으로 서울살이를 해왔던 부부였다.
이 시대에 남자들은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자연 속에 묻히길 원한다.
숨 막히는 콘크리트 숲 살이가 비단 답답했기만 했겠나?!
인간계의 이기심과 시기심과 잔인함이 무시로 잉크처럼 번져 내리는 빌딩숲
사이에서 인간에 대한 환멸과 두려움도 컸으리라.
정글보다 더 잔인한 빌딩숲에서 부부란 이름으로 둥지를 틀고 뭉친 그들은
살아남았고, 정년의 화려한 테이프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남자는 70살이 되었고, 여자는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이런저런 핑계가 붙어 정년 후 도회지를 떠나지 못한 이 부부는 고향 땅을 자주 찾는다.
남자에게 고향은 어머니의 품 안이고 추억이며 쉼터다.
남자는 그곳에서 지치고 다친 몸을 이끌고 샘가를 찾은 사슴 마냥 그저 목을 축이고
지친 다리를 뻗어 몸을 뉘여 고향 볕을 받는 것이 소망일 터였다.
애초부터 남자는 이상에 살고 여자는 현실에 사는 동물이라, 부부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남자에게 고향이 쉼터라면 여자에게는 무언가를 얻고 싶어하는 수입원이거나
소득처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고향에 오면 대밭에 바람이 와서 대숲을 일렁이다가 흩어지는 모습이랄지,
아침나절 저수지에서 물 안개들이 차 밭으로 몽실몽실 몰려왔다가 담요처럼 제 몸을
둘둘 말아 어디론가 사라지는 모습들을 바라보는 게 크나큰 행복이었다.
그 시간 여자는 산을 탔다.
뒷산에 가면 고사리며 취나물들이 지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뒷산이라도 예전에 나무 해 나르고 소 풀 뜯기던 곳이 아니었다.
길은 묵어 없어지고 그 자리들엔 가시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나 지나는 사람의
옷을 함부로 쥐어뜯곤 한다.
거기다가 천적이 없고 사람들이 잡아먹지 않아 개체 수를 늘린 멧돼지들이
사람을 만나도 피하지 않고 달려들기 때문에, 산속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닌 것이다.
어찌 되었던 여자에겐 욕심이 있었다.
이 나물들을 뜯어다가 자식과 손주들에게 먹이면 시중에 나와 있는 나물들만 할 것인가?
자식들은 대부분 온상 재배한 것이거나 중국산이 분명한 나물들을 자식들은 비싼
돈 주고 사 먹고 있으니 말이다.
재배란 농약을 친다는 말도 되니 봄 한 철 자연에서 채취한 나물이야말로 신선초이고,
어떤 보약 못지 않는 것들이 분명할 터였다.
봄에 나는 것들은 이름 없는 풀조차도 약이 된다고 한다.
어느 늦봄 날 이 부부가 고향을 찾았다.
더 정확히는 고향 땅을 지키며 사는 처남을 찾아왔다.
그 담날부터 여자가 몸이 달았다.
새벽부터 망태기를 메고 혼자 산에 올라 취나물이며 고사리들을 해 날랐다.
며칠 뒤 간밤부터 질금거리던 비가 아침이 되자 바람에 날리며 내렸다.
여자는 산에서 비를 흠씬 맞았다.
몸빼바지는 다리에 감겨 걷기가 힘들고 윗도리를 적신 빗물은 다시 몸빼와
신발을 적셨다.
여자는 설마 하고 산 밑에서 우산이나 우비를 든 남편을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언제 하산할지도 모를 여자를 남편이 기다릴 리 만무했다.
여자는 골이 났다.
집에 오자마자 눈에 독기를 담고 남자에게 퍼부어댔다.
남자는 어이가 없었다.
“ 차라리 핸드폰을 가지고 가던지 하지, 언제 내려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느냐”고
반박했다.
여자는 악을 쓰다가 울었다.
이제껏 같이 살면서 당했던 설움이나 분풀이를 옳게 한 모양이었다.
옛날.. 언제 적인지 기억조차 없는 옛날 얘기들로 공박하니 남자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가 남자는 화를 벌컥 냈다.
“ 누가 산에 가라고 시키냐고.. 왜 허리도 아프다면서 위험한 일을 자꾸 하느냐고..
이럴려고 맨날 고향에 오자고 한 거냐”고 짜증을 냈다.
여자는 자신이 듣고자 하는 말이 아닌지라 “세상에 어떤 남자가 그리 무심하냐..
독사다.. 저리 독하니 나를 젊어서부터 고생만 시켰다“는 등 악을 써 댔다.
화가 난 여자를 말로.. 논리로 달랠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더욱이 점잖기로 소문난 양반이라 제대로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남자는 화가 나서 차를 끌어 상경 길에 올랐다.
올라가다 보니 화가 삭는 게 아니라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서운한 맘이 들었다.
천안 어디쯤 가다가 처남의 전화를 받았다.
밖에 나가있다 뒤늦게 전후 사정을 들은 처남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달랬다.
“ 나이가 한둘도 아니고 고향땅에 왔다가 싸우는 건 무슨 꼴이며,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어떻게 마누라를 남겨두고 갈 수 있느냐“고
핀잔하면서도 마음 풀렸으면 발길을 돌리라고 달랬다.
비가 그쳤다.
남자가 어둠이 내리는 산골 마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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