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으로 가기

고구마에 대한 추억.

선 인장 2008. 12. 14. 18:32

 

 

         

 

고구마 순을 묻는 날은 이상하게도 비가 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그 일을 해 왔으니까,

 

왜 그러한지도 모를 때부터 고구마 심기를 해 온 셈이다.

 

고구마는 고온다습한 것을 좋아하는 열매 채소여서 그러한

 

것임을 한참 후에야 알았지만, 비가 온 끝이나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모터펌프가 귀하던 시절에 일부로 냇가에서

 

물을 길어다 주거나 그 위쪽에서 물이 들어오도록 한참을

 

물길을 만들어내야 했으니까 비 온 후에 비를 맞고서라도

 

부랴부랴 고구마 순을 따다가 심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보리가 패고 누렇게 익어가거나 벨 시기가 되면 고구마 심는

 

계절이 온다.

 

아마도 그때가 5월 하순경이니까 늦봄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아버지가 손에 쟁기를 얹어 시냇물이 흐르는 냇물에 발을 적시고

 

건너가면 거기에 돌을 치어서 만든 깽번 밭이 있다.

 

고구마 순은  황토밭에서 큰 씨 고구마를 미리 심어

 

놓았다가 순을 잘라서 심는데. 너무 길어도 심는데

 

불편하므로 보통 어른 한팔 길이만큼 잘라서 미리 만든

 

밭이랑의 둑에 호미로 긁어 순을 심고 흙을 다시 덮는다.

 

때론 옷 입은 채로 비를 맞고 일을 하다보면 옷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기도 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봄비에 흠씬 젖기

 

십상이었다.

 

때론 비닐을 잘라다 대충 걸쳐 입는 행운을 잡기도 했지만,

 

어른들이 일일이 그런 일에 신경을 쓰지도 못할 정도로

 

바빠서 맨몸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 재수가 좋을 때는 비료 포대 한 곳은 트고 한 곳은

 

목을 내놓는 들녘의 허수아비 같은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즉석 비닐 옷을 만들어서 입혀주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해

 

지던 때가 있었다.

 

고구마는 별도로 약을 하거나 잡초를 매어주지 않아도

 

잘 자라서 넉 달이 지나면 수확을 한다.

 

서리가 내리기전에 수확을 하는데 서리가 내리면 잎이

 

까매지고 고구마가 얼어서 저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고구마는 흰색이나 황색 노란색 빨간색 등 품종에 따라

 

색상이 다양한데, 요즘 나오는 호박고구마나 밤고구마 외엔

 

맛이 대동소이하다.

 

오히려 지질이 맛에 더 영향을 미치는데, 밭갈이를 깊게 하여

 

두둑(밭이랑)이 높은 밭은 씨알이 굵고 원줄기에서 잔뿌리가

 

많이 나와 수확량이 많다.

 

퇴비 등을 많이 낸 밭에는 당도도 높고 심이 억세지 않아

 

먹기에 좋으며, 질소 성분이 많은 화학비료를 너무 많이 주면

 

심이 억세져 쪄 놓으면 맛이 떨어진다.

 

또한 열대지방이 원산지라 고온다습한 것을 좋아하나 너무

 

습기가 많으면 썩기 쉬워 물이 많은 논이 아니라 밭에 심는다.

 

생명력은 아주 질겨서 줄기를 대충 잘라서 땅에 묻으면

 

자투리땅이나 척박한 땅을 가리지 않고 잘 크는데,

 

두둑이 높고 물 빠짐이 좋으면 다수확을 할 수 있다.

 

비도 많고 볕도 많은 어느 해 깽번 밭 군데군데

 

연보라색으로 고구마 꽃이 피었었다.

 

아버지는 그 해뿐만 아니라 다음해에도 풍년이 들거라고

 

흐뭇한 웃음을 지으셨다.

 

고구마는 중앙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재배하는 것을

 

포르투칼인들이 발견해서 여기저기에 전파했고 우리나라는

 

대마도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걸로 전해진다.

 

**

 

고구마는 배고픈 시절의 구황식물이었다.

 

그 당시에는 보통 학교 점심도시락을 고구마로 싸 온

 

아이들이 많았고, 그것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쌀이

 

귀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번 심어 놓으면 따로 농약을 할 필요도 없고 따로

 

돌보지 않아도 저절로 잘 크는 효자식물이다.

 

특히 기나긴 겨울을 보내는데 더 할 데 없는 먹거리이기도 했다.

 

겨울방학을 하면 대부분의 농촌 아이들은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고, 놀면서 오히려 더 배가 고파지는데

 

특별한 간식거리나 과자가 없던 시절이라 아이들에겐

 

식사대용품이요, 군입거리이고 갖가지 요리를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훌륭한 요리재료이기도 했다.

 

고구마는 주로 쪄서 먹는데, 가마솥에 대접을 엎고 반

 

바가지의 물을 부은 다음 김이 날 때까지 불을 때다가

 

쇠 젓가락으로 찔러 보아 들어가면 익은 것이다.

 

그 외에 불을 때고 남은 재에 묻어서 구워 먹기도 하고,

 

생으로 통고구마를 횡으로 동그랗게 썰거나 약간 비스듬하게

 

엇 썰어서 지붕에 말려 놓으면 겨울철 날씨에 얼었다

 

풀리기를 반복하며 맛이 들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기도 한다.

 

같은 방법으로 고구마를 삶은 다음 썰어서 지붕에 말려

 

놓으면 색깔이 검어지면서 맛이 드는데, 얼었다 풀리는

 

날씨 속에서 단맛이 강해지고 말린 다음엔 쫄깃쫄깃 찰기가

 

있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기에 좋다.

 

때론 고구마를 채로 썰어 밀가루와 걸쭉하니 반죽해서

 

튀김을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콩기름도 부족하던 시절이라

 

특별한 날이 아니면 만들어 먹지 못했다.

 

***

 

농촌에선 기나긴 겨울을 무위도식하진 않았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짚으로 새끼를 꼬고, 어떤 집은

 

가마니틀을 만들어 방에 틀을 앉히고 2인1조가 되어 밤이

 

이슥해지도록 가마니를 짜낸다.

 

그 가마니를 인근 5일 시장에 내다 팔아 가용을 쓰곤 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마포자루랄지 하는 화학포대가

 

없었으므로 5일 시장에는 의례히 가마니전이  펼쳐지기

 

마련이고 좋은 짚으로 짰는지, 매끄름하니 밖으로 나온

 

짚 거스러미들을 손질 잘 했는지에 따라 비싸게 팔기기도 했다. 

 

간밤에 손바닥에 불나도록 새끼를 꼬다 잠이 들어서 첫

 

새벽에 일어나 찬기 도는 보리밥 한 그릇을 김치 하나에

 

먹고 나서, 그 꼬아 논 새끼줄로 날줄과 들줄을 엮어

 

그 사이에 강도가 강한 일반볏짚을 대나무 꼬챙이로

 

넣어가며 쳐서 짚 가마니를 짜내면서 오죽 배가 고팠겠는가.

 

그럴 때면 새참으로 고구마 찐 것에 물김치가 나오고 점심

 

때도 보통 그 고구마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종일 어깨야

 

빠지든 말든 일들을 해냈다.

 

한번 쪄 논 고구마는 겨울날씨에 2~3일 동안 버틸 만큼

 

빨리 쉬지 않아 그때마다 쪄내야 하는 불편도 없다.  

 

수확해 논 고구마는 추위에 쉽게 상하므로, 수확한 뒤에는

쇠죽방 귀퉁이에 덕석을 둥글게 말아서 집을 만든 다음

그곳에 저장고를 만들어 두고 겨울이 지나도록 수시로 꺼내어 먹는다.

이듬해 봄이 되고 저장해둔 고구마에서 움이 틀 때면,

다시 또 씨 감자를 묻어 고구마 순을 묻는 계절이 온다.

 

그 고구마가 쌀이 흔해진 지금에야 그 크기가 한입에 들어갈

 

만큼 작은 것이 각광을 받고 폭신폭신한 밤고구마가 지역

 

특산품으로 팔려나가고 간식도 아니고 주식도 아닌  별미로

 

팔리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고구마 !

 

그것은 쌀이 부족했던 시절, 배고픔을 잊게 해주고 내일을

 

꿈꾸게 해주는 식물이었다.

 

보리쌀도 부족해서 항상 허기지던 그때 그 시절의

 

민초들에게 생명이요 희망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