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탕에서.
거기에는 사회에서 직업이 붙여준 옷과, 인간관계에서의 형아우 가정내에서의
남편 아빠 등등의 실존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옷이 있고,
외양을 숨긴다거나 돋보이게 하는 보이는 옷이 있다.
옷이란 게 털없는 벌거숭이 몸뚱이를 추위와 가시 등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게 기원이라지만, 현대에서는 자신을 표현하고 과장하는데에 까지
활용되고 있다.
옷과 더불어 사람들은 자기 표정이나 감정을 감추는 가면을 쓰게 되는데,
이 가면 역시 보이진 않지만 자신을 감추는데 쓰이는 옷인 셈이다.
목욕탕에 가면 누구나가 옷을 벗게 된다.
옷과 더불어 체면과 신분 등의 옷과 애써 감춰왔던 가면을 벗게 된다.
가면을 벗는 것은 굳이 그곳에서 체면치레나 자기과장을 할 필요가 없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굳이 이해관계 있는 업무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리라.
그곳에는 키가 작은 사람, 큰 사람, 똥배가 나온 사람,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사람, 근육질인 사람 등 다양한 몸들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또한 전체적인 외양 외에도 남탕에는 각기 다른 남자의 거시기가 있다.
여자들의 행태는 잘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남자의 거시기는 하나의 자랑거리가 된다.
거시기가 큰 사람은 보란듯이 당당히 내놓고 덜렁거리고 걷는 반면,
거시기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손으로 가리거나 엉거주춤 걷는 폼이
영~ 자세가 안 나온다.
그래서인지 거시기를 수술로 확대해서 키운 사람마저도 당당하다
그곳에 꼴불견이 있다.
그중 하나는 어린애들 관리소홀일 것이다.
공휴일이 되면 어린애들을 많이 데리고 오는데, 이 어린애들이 어찌나
장난을 해대던지 눈살을 찌뿌릴 때가 많다.
사내애들이어서인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서로 물바가지로
물을 뿌리고 탕에서 뛰느라 첨벙거려 동네 어른들을 쫓아내는가 하면,
열탕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도 찬물을 튀기기가 예사다.
목욕탕 아저씨가 이따금 나무라지만 그때뿐이다.
이쯤되면 보호자가 좀 나무랄 법도 하건만,
그저 노는 모습이 귀여운지 흐뭇한 미소를 띠는 저 얼굴은 뭔가?
왜 나무라지 않느냐고 하면, 애들 호통치면 기가 죽는다나 어쩐다나
기가 막힌 자기 편의주의적 이기심이다.
그 두번째는 일부 어른들의 예의없는 행동이다.
아무대서나 가래침을 뱉어내고 그냥 가버린다.
자신은 그 자리를 피해 가겠지만 물을 뿌려서 씻어내지 않으면
누군가는 그걸 밟을 게 아닌가.
또 냉탕을 첨벙이다가 코를 풀어서 그 물에다 띄워 놓는다.
물론 자신에게서 멀어지도록 물살을 휘휘 저어 멀리 내 보내지만,
그게 어디로 가겠는가?
그러한 행동에 남의 눈치를 보는 법이 없이 거침 없는 것이
한 두번 해 왔던 게 아니었던것 같다.
그것이 옛날 냇물에서 목욕하면서 생긴 습관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걸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어찌 알고 몸을 담그러 가겠는가?
그곳에 가려다 주춤거리면서 불쾌감이 확 밀려온다.
불쾌감은 화를 불러와 귀싸대기라도 올려 붙이고 싶어진다.
그 외에도 혼자 몸 자랑하며 욕탕 안에서 제자리 뛰기 운동을
한다거나 복싱연습을 하는 등의 꼴불견이 있다.
몸에 용문신, 토끼문신 하고 다닌 깍뚜기보다 더 꼴보기 싫은
모습이다.
또 플라스틱 의자에 덕지덕지 붙은 까만 때 씻어내지 않고
그냥 가버리는 모습도 짜증을 유발한다.
샤워기로 뿌려도 쉬이 떨어지지 않는 남의 때를 내손으로
씻어내야하는 불쾌감이다.
이런 사람이 자기가 흘려놓은 비눗물 씻어내고 갈 리가 없다.
목욕탕에서 다리를 벌리고 엎드려 머리를 감는 모습도 과히
보기좋은 모습은 아니다.
신체구조상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여자들의 이 모습이 더욱 보기 싫겠지만,
남자들도 흉해 보일 때가 있다.
하필 다른사람 앉아있는 눈높이에 맞추어 덜렁이를 흔들거리며
머리를 감는다거나 하는 행동은 어쩐지 거부감이 든다.
목욕탕에서는 누구나 알몸이 된다.
알몸이 된다는 건, 숨길 게 없다는 말이 된다.
숨길 게 없다는 건, 본연의 모습· 본성의 모습으로 서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거시기를 자랑하는 것 보다, 등짝의 용문신을 자랑하기보다,
예의바름과 남을 위한 배려를 자랑하는 게 어떻겠는가?
알몸의 진실로 섰으니 나는 이리 예의바른 사람입네..
나는 이리 인격자 입네 하고 내가 썼던 플라스틱 의자 깨끗이 닦아
뒤에 쓰는 사람 위해 주고,
내가 흘려논 비눗물 물로 씻어내리고,
아무대서나 가래침 뱉지말고,
코풀어 냉탕에 풀어 놓지 말고,
아이들 물장난 못치게 공중도덕도 가르치고 나면 목욕탕 가는 일이
얼마나 즐겁겠는가?
아는 얼굴 만나 인사하고, 반가운 사람 만나면 탕에 나란히 앉아서
근황도 묻고 정담도 나누면 또 얼마나 좋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