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 발자국을 찍으며.
이천십일년 십이월 이십오일.
눈이 펑펑 옵니다.
산골엔 밤이 빨리오고 인적도 빨리 끊깁니다.
어느 낮은 한옥 토담집 먼지낀 작은 창문에선 백열전구의 불빛이 따스하고,
도란도란거리는 소리는 오늘따라 정겹습니다.
인적에 놀란 개 컹컹 짖어대는 소리는 메아리로 울려 퍼지고,
어느집 굴뚝엔 장작나무를 태운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연기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이내 공중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여기가 어디더라..?
이곳은 내가 이번에 발령 받아온 산골마을 인구 1,300여명의 작은 면이랍니다.
면소재지라야 음식집 두군데에 면사무소 파출소 농협 우체국이 겨우 자리한
조그만 곳이지만, 읍내완 많이 떨어진 곳이라 주민들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기관들입니다.
진작 있을 하반기 발령을 성과평간가 뭔가를 한다고 자꾸 미루더니,
연말인 12월 중순에야 겨우 마쳐 눈 쌓인 길을 짐싸오게 합니다.
자원한 곳이지만 동안 정든 곳을 떠나온 발걸음이 가볍지만 않은 것은
이사람의 연약한 심성 때문일테지요.
이곳은 해발이 높은 탓인지 다른 지역보다 눈이 자주 내리고 많이 내립니다.
동지를 지난 겨울은 심환처럼 깊어가고, 그 겨울 한복판에서 나는
이 낯선곳으로부터 생활을 시작하려 합니다.
인적 끊긴 도로에 서서 오래된 천식처럼 기침을 토해내고,
때론 아~ 하고 탄식도 하는 겨울날들입니다.
눈 녹은 대지 위에 다시 또 눈은 내려 자꾸자꾸 쌓여갑니다.
내일 새벽녘엔 누군가의 발자국 보다 내가 먼저 나설 수 있을 겁니다.
그 길을 첫걸음마처럼 조심스레 한발한발 옮기면서 걸어볼랍니다.
내 지나온 자리 뒤로 다시 또 눈이 쌓이듯이,
내 후배들은 언젠가 그 길 위를 걸어갈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