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에 대한 주관적인 고찰
담배를 즐겨 피우는 사람들 차 안은 담배연기로 그을려 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의 방을 들어가 보라.
담배의 찐 냄새가 배어 구토가 나올 지경이다.
어떤 사람들은 보행을 하면서 담배를 피우다가 지나는 사람의 팔뚝을
불로 지지기도 하고, 좋은 옷에 구멍을 내놓기도 한다.
담배연기는 모처럼 즐거운 나들이길 기분을 망치게도 한다.
이러한 차에 자신의 집 장판과 옷이 성할리 없다.
옷은 군데군데 구멍나기 쉽고, 장판에도 담뱃재에 탄 흔적을 남긴다.
담배피우는 사람들의 호주머니는 항상 가득 차 있다.
호주머니엔 담배가루와 잔돈도 남아있고 담배갑과 라이터가 들어 있으니 말이다.
담배나 라이터가 없으면 안절부절하고 근방 가게를 찾기에 바쁘다.
이 담배가 어디가나 골치다.
성인남자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담배가 청소년들과 여성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기호품으로 팔려 나갔다.
어린 청소년들에겐 교육당국의 무관심과 걸핏하면 제 자식 팬다고 달려드는
무식의 갑옷을 입은 용감무쌍한 학부모들의 반발 등 교육환경의 변화로 흡연
을 하는 게 하나의 유행이 되어갔다.
흡연을 하는 게 반항기의 표상이고 성인이 되는 줄 아는 어린 학생들에게,
이를 제지하려는 사명감 있는 선생님들은 다혈질이고 시류를 모르는 어리석고
못난 사람일 뿐인 걸까?
여성의 사회진출과 더불어 여성의 흡연률도 높아져 갔다.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는 흡연문화는, 한 때 흡연을 하지 않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세태에 까지 이르렀다.
집에서.. 회사에서.. 길에서.. 차 안에서.. 등산가서.. 놀이터에서.. 어디든지
사람이 모이는 곳은 담배연기가 매캐하다.
정부에서는 담배에 대한 해악을 방송매체와 강의를 통해 청소년들을 상대로
홍보하다가, 급기야 청소년들을 상대로 담배를 파는 가게 주인을 입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거 남자들은 대부분 군대에 가서 담배를 배웠다.
훈련기간은 고되지, 5분 휴식 10분 휴식동안 한데 모여 쭈구려 앉아
남들 담배 피울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기가 뭐해서 차츰
같이 피우게 된다.
그리고 보급품으로 한 달에 15갑씩 나오니 담배를 피우지 않던 사람들에게도
담배를 강권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처음에 동료에게 주던 사람들도 그게 아깝고 휴식시간에 달리 할 일이 없어
피우게 된다.
물론 지금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쿠폰 등으로 px에서 직접 구입해 피우게 한다.
피우지 않는 사람들은 그 쿠폰으로 다른 생활용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나도 논산훈련소에서 담배를 배워 8년간이나 피웠다.
매일 갑반을 피워댔으니 얼마나 철이 없었던가.
폐가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을 한 셈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누가 피운 담배연기는 싫었다.
비단 나뿐이겠는가?
담배에 중독된 사람들도 남이 피우는 담배연기, 특히 그냥 손가락 사이에서
타고 있는 생담배 연기는 못 맡겠다고 한다.
아들을 낳고도 방안에서 흡연을 하는 게 남자들의 권리인양 버티던 오기가
아들이 폐렴을 앓고서야 멈추게 되었다.
어느날 생각해보니 내가 사람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세 상하방에서 갓난 아들을 눕혀놓고 담배를 피우는 것이, 대체 사람이
할 일이냐는 생각에 미치자 당장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가장 귀에 들어오는 게 물을 이용한 담배끊기였다.
그때 배운 담배끊기
1원칙: 음식을 먹은 후 자리에 앉아 있지 말 것.
2원칙: 담배생각이 날 때마다 큰 컵으로 찬물을 마시기, 그래도 담배가 생각나면
그 생각이 안 날 때까지 물 컵으로 찬물 마시기
3원칙: 담배 피는 사람들과 멀리하고 사람들 모여 잡담하는 데 가지 않기
4원칙: 주위에 담배 끊었음을 선포하기였다.
내 경우엔 다른 여타 방법들은 신통치 않아 소개하지 않기로 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흡연에 대한 권리를 부르짖던 사람들 목소리는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음식점이나 사람 모이는 곳 어디서나 담배를 빼어 물던 사람들도 금연구역
지정으로 점차 밖으로 내 몰리고 있다.
법으로 금지된 구역에서만 그러할까?
아니다.
자기네 집 안방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이제 찾아보기가 힘들다.
자기 부인이 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허용해 주는 경우라도 손자 손녀가 생기면 담배연기에 질색하기 때문에
더 이상 방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밤마다 아파트 베란다나 복도의 작은 창에는 반딧불처럼 담배가 타고 있다.
문제는 겨울이면 모두 닫아놓은 창을 여름이면 몽땅 열어 놓는다는 사실이다.
이 담배연기가 슬금슬금 위층 창을 통해 들어오니 그 집은 어쩔 것인가?
자기네 집 거실에서 쫓겨나 베란다에서 피우면 대부분은 연기를 의식적으로
멀리 날려 보내게 되고, 중간창을 닫아 놓기 때문에 자기 집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 연기가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위로 올라가 다른 집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이다.
또 화장실에서 태우면서 환풍기를 틀어도 환풍기가 작동되지 않는 2층으로 일부 들어온다.
그러니 화장실 가기도 머리 아프고 짜증난다.
이쯤 되면 더워서 열어 놓은 창을 안 닫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2년 전에는 아파트 알림판이며 엘리베이터 내에 하소연 글을 써서
붙여두기도 했었다.
'여름밤에 창문 못 여는 고통을 아십니까?' 제하의 글들은 담배연기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제발 밖에서 피워달라는 부탁의 글이었다.
나는 담배연기가 싫다.
그냥 싫은 게 아니라 너무 싫고 짜증나고 머리 아프다.
남이 태우는 담배연기가 흘러 내 코에 닿는 순간 머릿속이 띵~하고 울리고
메슥거려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우리사무실 직원들도 절반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밖으로 쫓아내도 때로 밖에서 피우는 연기가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그때마다 주의를 주건만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다.
담배를 끊은 후 동료를 괴롭혀서 담배를 끊게 만든 경우가 몇 건 있었다.
특히 환갑이 넘은 장형이 열아홉살때엔가 배웠다던 담배나,
바로 위 형이 군대에서 배웠다는 담배를 끊게 하였다.
처음엔 내가 젤 먼저 담배를 끊으니 둘째형 나보고 독하단다.
담배 끊은 사람과는 상종치도 말라는 말을 들었다며 농담인지 진담인지를
흘리면서 열심히 자기합리화를 하였었다.
명절 때 몇 번 권해도 안 되겠기에 형수들을 공략했다.
“아니, 형수님들은 담배 핀 입하고도 뽀뽀를 합니까? 옷에 배지, 머리칼에
배지, 그 냄새나는 사람과 어떻게 한이불을 씁니까? 당장 못 피우게 하세요” 하고.
다음 해에는 찍소리 못하고 담배를 끊고 온 두 형.
어찌 담배를 끊었냐는 물음에 말도 못하고 웃고만 있다.
아무렴 남자들이 어찌 여자를 당할까?!
그 자신 대접받지도 못한 처지에 흡연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담배가 주는
행복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자신의 흡연으로 아무 관련 없는 타인이 괴로워한다면 다시한번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사상초, 우정초, 휴식초 다 좋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한 몸과 마음, 그리고 이웃의 행복한
삶을 위한 배려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의 행위야 어쨌든 남이야 고통 받든지 말든지.. 이런 식이라면,
도의와 예절과 분별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