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잃은 남자
남자의 욕망은 어디까지일까?
남자는 평생 성문제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 사회생활이란 이름으로
무리생활을 하면서 사는 모습들은 때론 이해할 수 없게 한다.
여기 작은 마을에 사는 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를 통하여 우리 사는 모습을 한번쯤 반추해 보자.
50이 넘은 이 남자.
농사를 짓는 일보다 남의 집 품팔이나 공공근로로 입에 풀칠하는 사람이다.
그런대로 부농인 집에 태어나 남 배 주릴 때 고생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다.
어릴 적 집에 불이 나 형은 죽었고, 자신은 얼굴 한쪽과 팔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나마 부모가 서둘러 피부이식을 하고 치료를 계속해 사지를 건사하고,
얼굴은 본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부모 돌아가신 후에도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지내므로 살림이 더 축날 수밖에 없었다.
결혼 후에도 그러한 행태는 계속돼 매일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가난한 생활을 해왔다.
불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약간 모자란 부인이 낳은 딸들이 둘 다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러하니 온 정신으로 제대로 버티겠는가마는 날이면 날마다 술이다.
자신 몸이 화상으로 망가져 팔다리가 흉측하다 할지라도 얼굴과 손발은 성한데,
매일 술에 젖어 살 필요가 있을까하는 비난은 속 모르는 사람들의 소리일 것이다.
이 남자, 남자치고는 제법 잘 생긴 얼굴을 가졌다.
어느 날 한 동네에 사는 과부와 정분이 났다.
돈도.. 시간도 넉넉치 못한 살림살이라 동네 식당에서 자주 만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둘이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여럿이 어울리는데
꼭 그 여자가 끼는 행태다.
둘이서 은밀한 장소를 찾지 않아도.. 둘만의 밀어를 속삭이지 않아도
한 동내에서 식당에서의 매일처럼의 만남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호주머니에 송곳을 감추고 다니면 아무리 두꺼운 옷이라도 뚫고 나오는
이치와도 같은 격인데, 자기 부인이 모자라다고 해서 방역초소에서 일당
7만원을 받으면 바로 식당에 가서 술을 마시며 자기 여자친구를 부르는데
누가 그 분위기를 모를 것인가?!
또 밤중이면 여자 집으로 슬그머니 들어가는 남자의 모습이 주위에 자주
포착되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이 났다.
자기 부인이 그 소문을 듣고 뭐라 하면 주먹을 써서 오히려 부인을 쥐 잡듯이
잡아서 꼼짝 못하게 하고, 누가 주위에서 수근거리면 저 여자가 미쳐서 그러니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니 참..사람이란 게 더럽더라.
그러면, 밤마다 남의 여자 집으로 찾아가는 게 자신에겐 얼마나 만족을 주고
기쁨을 주는 것일까?
행복? 만족? 기쁨? 위로?
글쎄...
자신의 둥지를 떠난 새가 남의 둥지에 앉아본들 얼마나 편안할 것인가?
얼굴에 수심의 골은 더 깊어가고 사람들에게 더 적대적이 되어가는 걸 보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남자에게 있어 여자는 하나의 거대한 홀이다.
아무리 파고 또 파도 그 깊이를 다 채울 수도 없고 끝을 알 수 없어,
자신의 몸만 삭아간다는 게 옳은 말일 것이다.
여자의 몸만 그러한가?
마음속도 그러하다.
함부로 쉽게 안겨온 여자가 나만 바라보고 살 것인가?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 여자의 일생도 그러그러하여 나이든 남자와 살다가 남자가 제 구실을 못하자
뛰쳐나왔던 여자인 것이다.
남자란 아랫도리가 부실해지면 여자가 바람날까를 저어하여 더 다잡게 되어 있고,
여자는 그럴수록 다른 남자를 더 그리워하게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을 참아내고 스스로 품위를 지켜나가는 게 인격이 있는 도의적인 사람이고,
배우지 못하고 자기성찰을 하지 못한 대충대충의 삶은 가장 먼저 욕망의 이끌림에
몸과 맘을 맡기게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눈 코 입 다 달고 있어도 똑같은 사람들은 아닌 것이다.
자신을 천한 곳에 두면 자연 천박해지고 누구나에게 무시당하게 되어 있는 것.
이것이 사람들이 만든 사회의 한 법칙이기도 하다.
해가 떨어지면 오늘도 그 남자, 그 여자를 찾는다.
남자는 여자에게 무엇을 찾으려 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 여자에게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것일까?
또 여자는 무엇을 얻고자 남자를 부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