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개
특정 동물이나 사물에 대한 애착과 선호는 어릴적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나는 개를 좋아한다.
지금도 길거리에 때 묻은 개든, 단정히 손질해둔 거실에 개든, 집 밖에 묶어둔
개든 다 좋아한다.
반가운 척 해도 경계심이 지나쳐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대는 개는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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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대개의 촌집이 그러하듯 우리집엔 동물이 많았다.
물레(툇마루) 밑엔 우리를 만들어 닭과 오리를 키웠고, 암소는 마당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또 돼지막(울타리)은 칫간(화장실) 옆에 만들었고, 헛간에는 염소를 키우고
또 그 곁엔 대나무로 만든 작은 막에 토끼를 키웠다.
개는 정제(부엌) 앞에서 졸다가 누가 올라치면 컹컹컹 목청을 높였다.
크지도 않는 작은 촌가에 그 많은 짐승들을 키우다 보니 동물이 항상 발에
채였다.
더욱이 집 마당에서 장작도 패고 수확해 온 곡식도 말리다보니 때론 우리에
다 가두지 않으면 난리가 날 정도였다.
특히 소는 재산목록 1호라 풀이 날 때는 풀을 날마다 베어다 줘야하고,
풀들이 마르는 늦가을부턴 연한 풀을 먹이기 위해 짚을 작두로 잘게 잘라
쇠죽을 끓였다.
농사일에 항상 바쁜 부모님을 도와야하는 처지의 촌아이들은 학교 가는 시간만
빼면, 땔감 나무를 해 나르고 풀을 베어 나르고 쇠죽을 쓰고 틈틈이 밭곡식도
심고 수확하는 일을 도왔다.
엄격히 말하자면 도와야 한다는 사명이 생기기 이전부터 자연스레 해야 하는
일로 알았고, 거기에 싫은 내색조차 할 수 없었다.
학교가기전 깔(풀) 한 망태기를 하고 가는 학교 길엔,
이슬 먹은 깔 망태에서 등짝으로 흡수된 이슬이 그대로 포장도 안 된 땅으로
흘러 내리곤 했었다.
학교 가기 전이 이러할진데, 끝나고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인들 있을리 없었다.
뛰어 오다시피 집으로 와서 소 풀 뜯기고 또 깔을 베어야 했으니까.
그러다보면 어둑어둑 해진 길을 소와 서로 의지해서 오는 수밖에 없었다.
날이 저물면 소는 소대로 풀 뜯기를 멈추고 똥그란 눈을 끔벅이며 겁을 먹고,
나는 나대로 또래의 애들과 합류하지 못한 귀가 길은 그 어두운 만큼
무섬증이 들었다.
밭 또랑의 비닐이 하얗게 날리면 사람이 부스스 일어난 것만 같고,
산 짐승들이‘뻐꾹뻐꾹’‘부엉부엉’ 울고 이름 모를 풀벌레까지 ‘찌륵찌륵’
울어대면 언젠가 엄니한테 들었던 시집못간 처녀귀신과 병으로 일찍 세상을
뜬 아기귀신들이 풀숲에서 갑자기 나타나 내 발목을 붙잡을 것 같아
왈칵 겁이 났다.
뒤에서 ‘푸르륵’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면 꼭 누군가가 뒤쫓아 올 것 같은
조바심에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힘센 남자들에겐 귀신이 덤벼들지 못한다는
말이 생각나 아는 노래를 목청 두껍게 하여 부르고 또 부르며 걸음을 재촉했었다.
이 어둔 길도 우리 집 개를 데리고 가면 그리 무섭지 않았다.
개가 길을 먼저 달려가 살펴보고 나한테 오고 또 주위를 빙빙 맴돌며 지켜 주어,
최소한 귀신이 가만히 내 발목을 잡을 염려는 없었으니까.
백구, 해피 등으로 불리던 잡종이었지만, 주인을 향한 충성은 가히 절대적이라
타인이 집에 오면 이를 드러내다가도 내 말 한마디에 꼬리를 내리는 모습은
귀엽기도 하고 듬직해서 개는 한 식구 같았다.
예전에 촌가는 개를 잘 묶어두지 않고 키웠는데, 어쩌다 식욕을 잃고 배를 깔고
앉아 이유 없이 아플 때는 목줄을 풀어주면 며칠을 논을 뛰어다니다가 얼마
후쯤이면 영락없이 배가 불러 있곤 했다.
개가 순산하면 젖이 부족할까봐 밀가루 죽을 묽게 쑤어 주기도 하고,
귀여워서 몰래 방안 이불 속에 숨겨 두었다가 혼이난 적도 많았다.
새끼가 눈을 뜨고 나날이 몸무게가 불면 시장에 새끼를 내다 팔기도 하고,
동네에 친한 집 주기도 하였는데, 그 후 며칠간은 마음이 아파서 밥도 못 먹을
지경이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해심이가 쥐약을 먹고 왔는지
약 먹은 쥐를 잡아먹었는지 눈도 안 뜬 새끼를 두고 죽은 사건이었다.
그날 저녁 무렵 그 해심이를 아부지가 바지게에 지고 산비탈을 돌아 야산에
몰래 묻었는데, 이틀 뒤 가보니 누군가가 파내가 버린 일도 황당한 사건이었다.
그 뒤 알아보니 동네 누군가가 그 사실을 알고 먹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다시한번 슬프게 만들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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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티비 모 방송국에서 동물농장이란 프로그램을 인기리에 방영중이다.
거기엔 동물들을 아끼고 특별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의 생활상을 담아내고
있는데, 다큐 형식이라 볼만 하였다.
며칠 전 방영된 프로에선 주인이 개를 욕조에서 씻기기도 하고 옷도 입혀주고
털도 다듬어 주고 염색도 해주는 모습을 방영했다.
방안에 소만힌 개들과 함께 살면서 개들과 같이 잠자고.. 먹고 개와 입맞춤도 한다.
개가 원체 크고 주인이 아가씨여서였을까?
개가 긴 혀로 주인의 입술을 핥는 모습은 어딘지 거부감이 일었다.
요즘엔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따지고 보면 개만큼 인간에게 충직한 동물은 없을 것이다.
개는 밉다고 발길질을 해도 아픈 배를 끌고도 주인에게 꼬리를 흔드니 말이다.
상대가 자신에게 애정을 준만큼만 주려는 보통 인간보다,
상대의 애정을 이용해먹는 일부 삐뚤린 현대인들보다 개가 열배 백배는
나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개를 방안에서 키우는 사람들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것은
사람보다 개가 더 가치 있는 세상인 것 같아 씁쓸하기 때문이다.
개는 너 나 없이 키우며 정을 주면서도,
버려진 애들을 그렇게 입양하여 키우는 사람이 극히 드문 현실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