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설(殘雪)
오늘도 나는 산에 오릅니다.
눈 내린지 한참인 산엔 아직도 녹기를 거부하는 눈 무더기 군데군데 하얀점을
찍어 놓았습니다.
산길을 따라 길 옆 둔덕에서 눈 한주먹을 움켜쥐어 봅니다.
찰기를 잃어버린 눈이 푸석한 머리카락처럼 거칠어 있습니다.
그냥 움켜쥐면 산산히 부서져 손가락 새로 빠져 버립니다.*세계지도를 펼쳐보면
한 점 파리똥만하게 표기된 대한민국 땅덩어리에 어떤 문제에도 한 뜻 한마음을
모으지 못하고,서로 상대를 헐뜯으며 반목하는 우리 민족성을 보는것 같아
웬지 씁쓸해졌습니다.
그것은 고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서로 동족의 가슴에 창칼을 꽂으며
영역 넓히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잉태된 불신일 수 있겠고,
조선시대에서도 끊임없이 당파싸움을 해가며 득세하지 못하면
밟히고 숙청 당해야만 했던 데에서 온 위기감 섞인 불신일 수도 있겠고,
그 이후에도 강대국 사이에 끼여 끊임없이 외침을 받아 가면서도
깨우치지 못하고 민족상잔의 6.25까지 겪으며 그 와중에 이편 저편을 갈랐던
데에서 생긴 불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일 수도 있겠습니다.
한편으로는 한정된 국토에 한정된 자원을 가진 약소국에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 끝에 자연스레 몸에 배인 상대에 대한 경계심
또는 적대감일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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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두 손으로 감싸 봤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꾹꾹 눌러 봤습니다.
부서질듯 서로를 밀어내는 눈알갱이들이 어느 순간인가 서로의
공간 안으로 몸을 밀어 넣어 완만한 공 모양으로 뭉쳐졌습니다.
이처럼 우리사는 세상에도 이웃과 이웃이 서로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
서로를 보듬고 서로 어깨를 맞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하여 단단해지고 야무져져서 이 모순 많고 말 많은 세상을
두루뭉실하게 불신하는 마음없이.. 경계심없이 살아갈 수만 있다면
또 얼마나 좋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