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칠월의 편지

선 인장 2010. 7. 12. 11:48

 

 

칠월이 오면..

 

칠월이 오면,

 

칠칠치 못하게 비가 자주 옵니다.

 

비를 맞으며 걸었습니다.

 

처음엔 살갗에 닿는 차가운 느낌도 낯설고

 

셔츠를 적시던 빗물이 눈물처럼 뚝뚝뚝 떨어져서 낯설어 했습니다.

 

이 낯설음은 곧 편안하고 내가 오래 전에 몸에 익힌 익숙한 감각임을 알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낯선 감각이 아니고 오래전에 세상에 혼자이다 싶을 때면 뛰어들던

 

그 포근함이었습니다.

 

거기에선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여도.. 맘 속 빗물 흘려내도 눈치채는 이 없이

 

편안했습니다.

 

칠칠하지 못함이죠.

 

누가 이것을 단정함이나 깔끔함이라고 하겠습니까?

 

이 칠월은 그런 칠칠맞지 못함이고 내자신을 태우는 일이며,

 

재로 남은 부삽에 빗방울 퍼부어 그 불씨를 꺼가는 달입니다.

 

내가 오늘 부삽의 재를 꺼내지 않는 것은

 

불타던 옛시절의 추억을 못 잊어서가 아니고,

 

오롯이 한사람을 사랑했던 흔적을 남기고자함도 아니고,

 

휴화선처럼 언제든지 탈 준비를 하고 있는 불씨를 아끼는 때문만은

 

아닙니다.

 

나 자신 휴화산처럼 보여도 언제든 타오르는 활화산이고,

 

그 활화산을 흙과 모래와 바위로 막아놨어도 사소한 자극에 터지고,

 

재를 꺼낸 자리에 다른 무엇을 채우는 것이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겁이 난다...

 

그것은 아직도 잃을 게 있다는 얘기고 지킬 게 있다는 말도 되지만,

 

실상은 별로 남는 것도 없습니다.

 

성급히 타올라 제 피와 살을 태우고 혈관마저 오그라든 불씨 앞에

 

무슨 볼 게 남아 있겠습니까?

 

굳이 거울에 비춰보지 않아도 초라한 초로의 모습.

 

돌이켜보면 크게 이룬 것도 없이 크게 나아가지도 못하고,

 

언제나 의욕만 앞서 세상이 가르쳐준 편안하고 뻔뻔스러운 길을 가지 못하고,

 

때론 가시밭길을 제 스스로 뛰어 들기도 하고,

 

때로 갈 길 잃어 제자리 빙빙돌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진탕진 길을 동무없이 가면서도 제 허리 굽히지 않고 가고자 했던 건,

 

자존심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비틀대며 걷기 싫었고,

 

남이 다 가는 길에서의 가치없음과 소란스러움과 이기심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이 좋고 싫음이 한계진 것이 실상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이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이 한계가 옅어진다고도 하고,

 

그 구분이 모호해 진다고도 하는데 굳이 그걸 구분짓고 거기에 따르려고 함은,

 

이 세상이 그리 가르쳐 왔던 것이지요.

 

그 법칙을 거스리지 못하고 배운대로 지켜가고자 하는 이사람의

 

어리석음일테고요.

 

 

 

 

무엇이 진리였습니까?

 

무엇이 진실이었습니까?

 

세상이 만들어논 논리나 법칙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 진실은

 

아니었단 것을 이제는 압니다.

 

오늘의 진리와 진실은 나의 실존과 꺼지지 않는 활화산,

 

그리고 나의 열망 그 뿐이었습니다.

 

때로 당신도 그러하리라 또한 나보다도 그러할 때가 있으리란 것도,

 

알고보니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고 착각이었는지요.

 

 

 

 

사람은 자기 그릇이 있다더군요.

 

그 그릇에 상대를 담지 못하고 일에 대한 열정이나 자기생존과 개발만을

 

담아둔다는 것도 자기선택일 것이고, 그 사람의 그릇이었습니다.

 

그 그릇에 自己愛 그것만으로도 가득찬 사람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사람을 담아두지 못할 정도의 작은 그릇을

 

지니고 산다는 것도 압니다.

 

자기 주변 정리를 철저히 하고 깔끔을 떠는 사람들도 자기애나

 

이기심으로 부터 자유스럽지 못하고,

 

자기 그릇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들이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임도 알아갑니다.

 

 

 

 

여기까지 생각자면 허탈해집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서 ..

 

무엇을 찾아 여기까지 왔을까 하고 생각자면 엄청 손해본 느낌이고,

 

바보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또한 이기심일테지요.

 

이사람, 주는 것으로만으로도.. 그리워하는 과정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으니

 

그걸로 된 겁니다.

 

애타하는 만큼 이 세상에 절실한 것이 있었다는 게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어디선가 낯선 바람이 옵니다.

 

빗방울도 굵어지고 하늘은 머리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수련은 넓은 잎사귀를 기울여 물방울들을 또르르 또르르 흘려내고,

 

하늘은 무거운 맘 내려 놓자고 자꾸 몸 속울음 내뱉어 놓습니다.

 

내려놓고.. 덜어낸다는 것,

 

이것이 자연입니다.

 

오늘 이곳에 무거워진 마음 한자락 내려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