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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가기

동백이 꽃 필 때.

by 선 인장 2009. 4. 1.

 

 

일찍 찾아온 봄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여기저기에 진달래 벚꽃을 활짝들

 

피워놓고 상춘객들을 흐뭇하게 합니다.

 

이곳 남산공원에도 하얀 눈이 내려 조그만 산을 하얗게 덮던 기억처럼,

 

벚꽃이 만개하여 살랑이는 바람에 꽃잎을 하나둘 날리고 있습니다.

 

참,

 

벚꽃은 피어날 때도 이쁘지만 바람에 꽃잎 하나둘 날리며 져 가는 모습이

 

더욱 이쁘다는 걸 또 한번 확인하였습니다.

 

벚꽃을 따라 등산로를 내려오는 길

 

그곳엔 동백이 벚나무와 소나무의 그늘아래에서 빨간 꽃들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겨울에서 초봄에 피는 걸 동백,

 

봄에야 비로써 꽃을 피우는 걸 춘백이라고 하는데,

 

동백이 이제사 꽃망울을 머금거나 혹은 꽃망울이 터지는 모습은

 

내가 있는 곳이 천국인지 꽃밭인지.. 현실인지 꿈인지 황홀함마저 주고

 

있습니다.

 

누군들 봄을 찬양하지 않으랴만,

 

동백 말이 나왔으니 동백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동백은 본디 습한 것을 좋아하는 탓으로 물이 많은 곳에 피어납니다.

 

습한 것을 좋아는 하지만 너무 습한 것은 감당치 못함으로

 

지나치게 물이 많은 곳에선 뿌리가 썩어서 잘 자라지 못합니다.

 

마치도 어느 누가 한꺼번에 닥치는 기쁨이나 슬픔, 사람이나 사랑 앞에서

 

항상 안절부절 하는 모습입니다.

 

 

 

 

근데요.

 

또 한가지 재미있는 건,

 

양지쪽에서 그늘 없이 피어나는 꽃은 대부분 이른 아침엔 꽃이 하늘을

 

향해 있다가 햇님이 중천으로 오를수록 고개를 숙인답니다.

 

또 그늘에서 피어나는 꽃은 하늘을 향해 피어납니다.

 

태양이 눈부시지 않아서 하늘을 향해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동백이 본디 2종이라고 하는데 변종이 많은지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여러 꽃들을 볼 수 있습니다.

 

흰꽃도 분홍에 흰색깔이 섞인 것도 새빨강도..

 

나는 그것들을 잘 구별할 수 있는 눈을 지니지 못했으므로,

 

그냥 빨갛게 홑겹으로 피어나는 재래종과 양파처럼 겹겹이 피어나는

 

외래종으로만 구분하고 있습니다.

 

겹겹이 피어나는 외래종을 보면, 눈코입 등 윤곽이 뚜렷한 서양

 

미녀를 보는 것 같이 얼른 확 뜨입니다.

 

그러나 피어나면서 비를 몇 번 맞았다거나 햇빛에 노출이 많았다면

 

태생적으로 하얀 얼굴에 주근깨가 많은 서양여자들처럼,

 

갈색의 점들이 생기고 커져 쉬이 시들고 맙니다.

 

질 때의 모습 또한 일백키로를 넘게 뚱뚱하거나 허리가 앞산만한

 

서양인 여자처럼 볼품 없고 지저분해 보입니다.

 

화사한 빛은 어디다 두고 저리 갈색으로 시들고 오그라드는지 안타까운

 

맘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떠날 때 떠나지를 못하고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 보면 권력을 잡은 사람이 끈 떨어져도 그 자리를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오지 말래도 와서 사랑한다고 무작정 달려들었다가 끝내 매몰찬

 

이별 통고에 악대기를 써대는 어떤 사람 모습처럼이나 추한 모습입니다.

 

화사함의 음과 양.

 

반면 토종 동백은 화사하게 피질 않습니다.

 

어딘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피어나고, 꽃잎 또한 크고 야무지고 두텁게

 

한 잎 한 잎 피어나서 새악시 볼연지처럼 선연한 빨강을 선사합니다.

 

겹동백처럼 그늘지지 않아도 햇빛에 쉬이 시들지 않으며,

 

질 때도 홀연히 그 자리를 떠나는 모습이 은근과 끈기와 인내와 배려를 아는

 

민족성을 닮았습니다.

 

어릴 적 동백기름을 유난히 좋아하던 막내이모처럼 항상 깔끔한 모습을

 

지녔습니다.

 

집에서 쫓겨 나온 나를 솜이불로 덮어주고 어째서 혼이 났는지.. 밥은 먹었는지

 

찬찬히 물어보고 " 괜찮아 괜찮아 내가 집에 얘기해 줄께.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집으로 가" 하고 다독이던 동백기름으로 더욱 까만 머리를 빗으로 이쁘게

 

빗어 쪽을 진 이모.

 

그 이모 집 싸리 울타리엔 초 여름날이면 특유의 향내로 십리 밖에서도 나를

 

끌어당기던 내 머리만한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리곤 했었는데.....

 

칠순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소녀 같은 이모님은 한꺼번에 여러 아픔을 겪고 고향을

 

떠나 멀리 부산 땅에 살고 계십니다.

 

 

 

 

토종 동백은 져도 한동안 아니 습기를 완전히 잃을 때까지

 

꽃잎을 해체하지 않고 기쁘게 웃고 있는 기품을 지녔습니다.

 

때로는 떨어지는 모습이 내가 풀 베다 벤 손가락에서 떨어지던 피처럼,

 

선명하게 뚝뚝뚝 떨어져서 어떤 아픔이 싸아∼ 하게 밀려오기도 합니다.

 

자, 그럼 동백이 지기 전에 동백 숲으로 다시 한번 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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