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마다 특색이나 문화가 다르듯 지방마다 특유의 말이 있다.
서울이 중심지라 서울말씨가 표준어가 됐지만, 그 지방에 가면 그 지방의 말씨가 표준어가 된다.
말씨를 살펴보면 전라도의 억양 없고 무미건조한 무뚝뚝한 말씨가 있고, 경상도의 악센트 센
말씨도 있다.
충청도의 느리고 부드러운 말씨도 있고, 강원도의 생소한 말씨도.. 제주도의 알아듣기 힘든 독특한
사투리도 있다.
또 같은 전라도라도 남도의 북도와는 다른데 남도 말씨는 억세면서도 탄력있고 부드러우면서도
묘한 가락을 지닌 반면 북도의 말씨는 충청도의 말씨와 뒤섞여 어쨌어유~와 같은 정감 실은 말씨다.
말씨가 성향에 미치는 영향도 분명 있는 듯 싶고, 거기에서 그들의 문화적 특성도 보인다.
전라도 사람은 경상도의 자기 부모에게 '밥무욱나' 하는 말에 경악해한다.
"원, 세상에.. 이런 싸가지 없는 자식들이 있나" 이런 식으로 받아 들인다.
경상도 사람은 전라도 사람의 그랬소? 어쨌소? 하는 투의 어른에게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모를
전라도 말씨를 듣고 경악한다.
"저게 반말이야, 존칭어야?" 하고.
세계지도상엔 겨우 한 점인 조그만 나라 대한민국에서 남쪽과 북쪽의 기온이 달라 꽃이 피고 지는
시기가 다르고 비 오고 눈 오는 것이 차이가 나듯이, 지역별로 이리 말투와 말씨가 다른 것이
때론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 말씨와 지역의 소외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남녘의 끝에 위치해 남쪽바다와 접해있는 전라도는 예로부터 농업이 발달한 곡창지대였다.
같은 남쪽이라도 산지가 많은 경상도는 농업보다 어업이 발달한 반면,
넓은 평야를 지닌 전라도는 쌀 생산이 용이하여 지금도 전라도의 쌀이 경상도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이곳에서 소비되는 대부분의 생선은 그곳에서 가져오니 쌀과 생선의 물물교환 식이다.
화폐와 물류가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직접 개개인이 이고지고 가서 물물교환을 하지 않지만,
물류의 흐름은 그렇다.
먼 역사를 훑지 않더라도 고려말에서 조선시대에 숱한 왜구의 침탈로 수많은 인명이 살상 당하고,
부녀자들이 끌려가거나 욕을 봐도 천리길 한양에서 보살펴 주지 못한 설움의 땅이다.
그래서 주민들이 자구책을 강구하다보니 유독 작은 성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왜구들이 침입해 오면 북과 징을 울려 가까운 야산에 숨어 난리를 피하는 한편,
그곳에 산성을 짓고 대창 등을 이용해 방어해 왔던 것이다.
일부는 자치단체에서 일부 성을 복원하고 있는데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후손들에겐 치욕의 역사일지라도 그것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조 때의 지주와 양반계층에게 농사를 지어 다 빼앗기고,
평생 아니 대를 이어 종살이로 생명을 연명하다가 죽어간 대다수 전라도 사람들은
이 땅의 진정한 민초였다.
그 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숱한 미곡공출이 있었고,
정작 그 미곡을 생산한 농민들은 굶어 죽어가기를 다반사로 삼았으니
기막힌 일이 아닌가?!
이 땅은 해방과 6.25를 거쳐 근대화의 과정에서 중앙과 멀다는 이유로
혹은 대통령을 내지 못한 (나중 한사람을 배출했지만)소치로 정부로부터 버려졌었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은 누구나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가지고 있다.
공단이 적고 도로망 등 지역발전이 상대적으로 더디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농정 포기로 전라도 사람들은 전국으로 뿔뿔히 흩어졌다.
그래서 제주도건 강원도 산골이건 어느곳에 가더라도 전라도 사람은 박혀 사는데,
그곳의 텃세를 이겨내기 위해서 억세어져 갔다.
초기 정착민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사는 꼴이 넉넉치 않아 후손을 늘리는데도
힘을 쏟지 못했다.
정부에서 농업을 포기한 후로 전라도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도시문명이 발달한 서울로.. 부산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그곳이 반겨줄 리 없었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은 언어습득 능력이 발달했다.
텃세와 배타심으로 부터 자유롭기 위해 경상도에 가면 경상도사투리,
충청도에 가면 충청도사투리, 서울에 가면 서울말씨를 금방 배우게 된다.
그리하여 전라도 사람임을 숨기려고 본적도 고치고 누가 물어도
본래부터 그곳에 살아온 것처럼 위장하고 살아간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전라도에 살고 있는 경상도 사람들을
전라도 사람은 경계하지 않는 반면 경상도를 포함한 여타 지방 사람들은
달가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서울로 대거 상경한 전라도 사람들 중 일부가 먹고 살 길이 없으니
깡패, 도둑놈, 역전 구두닦이 등으로 연명해 가면서 전라도 사람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온 탓이었다.
차기 정권을 잡기 위해서 정치권의 지역감정 조장도 한 몫을 제대로 했으니,
시대의 아픔이었다.
그 지역에 가서 둥지를 틀면서 온갖 궂은 일을 해 가면서도 전라도 사람이란
오명 속에서 손가락질 받고 의심의 싸늘한 눈초리를 감당할 수 없어
그 지역에 동화되어야만 했던 아픈 과거!
여기에 전라도의 또 다른 설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