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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가기

어느 가을날 오후

by 선 인장 2008. 10. 19.

 

 

 

 

 

 

 

 

조석으로 부는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한낮의 태양도 열기를 잃어가고


있는 요즘.


먼 산에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야 어쨌든 계절은 어김없이 와서 세상을


울긋불긋하게 채색해 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푸르름을 자랑하는 감나무 잎들은 자신이 키워낸 과실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하나둘 흙으로 가려 합니다


들녘을 꽉 채웠던 나락 밭이 듬성듬성 비어가고 껑충한 키로 서 있던


길가 어느 밭 수수대도 베어지고, 그 밑에 작은 키로 밭을 덮고 있던 콩밭도


비어 가고 있습니다


가뭄 덕분에 보기 드물게 잘 여물고 건정한 키로 몸매를 자랑하던 깨들은


한데 묶어져서 선 채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고,


엊그제 파종한 김장배추 양배추들은 제법 포기가 굵어져 새로운


녹색지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일찍 벼를 베어낸 자리에서도 미련이 남은 벼 포기에서 파란 싹을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수목들이 여름날 풀린 허리띠 졸라매고 몸단장을 새로이 하고 있는 이때,


새 생명이 자라고 있는 모습은 경이롭습니다


그러고 보면 가을은 생명이 봄날 여행을 시작해서 여름날 질펀하게 놀다

 

집으로 돌아오는 계절이 아닌가 합니다


집으로 돌아왔으니 여행에서 얻은 기억도 추억 속에 담고,


얻은 것 잃은 것을 하나씩 정리해 가면서 다음 봄날을 대비해가는


계절인 게지요


금방 다가올 겨울이야 봄날을 위한 힘의 비축기간이고요


가을빛으로 물든 나뭇잎을 책갈피에 넣어 소중하게 간직하던 소녀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들로 늙어 가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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