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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가기

요즘 남자.

by 선 인장 2010. 2. 3.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즈음,


길지도 않는 인생길을 걸어오면서 사회전체를 지배하는 관습이랄지


올바름에 대한 기준도 시대의 변천을 탐을 문득문득 깨닫는다.


일테면 남자가 부엌에 출입하면 뭐가 떨어진달지


남자는 눈물을 보여선 안 된달지 하는 관념들을 옳음으로 알고 교육받아


온 세대로선,  현재의 밖의 일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는 다재다능을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따라가기도 힘이 든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남녀가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닌달지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백주대낮을 활보하는 일은 기본이고, 남자가 아기를 앞에 대롱대롱 매달고


솜사탕을 빨고도 전혀 거리낌 없이 거리를 거니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은 서양문물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기존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자기편리한대로들 살다보니, 옳고 그름의 대한 가치기준도


없고 무엇이든 자신의 조그마한 자(尺)로 멋대로 재어 판단하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그 무너져버린 공간을 다른 종교나 법이나 관습으로 메우지도 못한다.


종교는 종교대로 여기에 답을 내놓는다거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지 못하고,  사회는 사회대로 어정쩡한 모습으로 방관하고 있는


모습이다.


양심이나 양식 있는 이들은 무너져가는 사회 풍조에 쓴 소리 하기를


멈추었고, 어떠한 대안을 내어 놓지도 못하였다.


‘될 대로 되라, 아니면 이 혼란기가 끝나면 새로운 질서가 잡히겠지’


하고 먼 하늘만 쳐다본다.


이 시대의 방관자들...


아니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 우리는 오늘 혼란스럽다.

 

이 땅의 4~50대 이전 남자들은 그 엄한 유교주의 관습아래 선후배나


어른에 대한 존경과 경외감으로 어렵게 대했지만,


이젠 선후배에 대한 개념 자체가 모호한 시대가 되었다.

 

그 이전의 세대야 나름대로 후배들에게나 여자들에게 대접을 받고


살아왔지만 그것은 차츰 전설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돈이 많달지, 권력을 쥐었달지, 하다못해 부모나 친척이 돈이나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주위에서도 어르신으로 대접받고 그러하지 못한 사람들은


(특히 남자들) 인생선배로서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예전에는 주로 음식도 나이어린 후배가 대접했고, 후배가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잘 하느니 못하느니 혼까지 나면서 말이다.


그런 눈칫밥을 먹고서 인생중년기 40대 후반을 넘어서다보니 거울 속에


있는 희끗희끗한 머리를 한 잔주름의 얼굴은 분명 자신의 얼굴인데,


세상이 달라져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시대가 이러하니 나이든 사람들이 솔선수범 해야지,


나이든 사람이 일해야 젊은이들이 따라오지 하고,


집에서는 누구누구네 아버지는 어떠어떠하더라는 비교 속에 서게 된다.


누구 집 아버지는 설거지를 아주 잘한다는 둥 누구는 음식을 잘한다는


둥 또 누구는 아내가 없어도 혼자서 방 청소며 밥도 잘해서 먹는다는 등


의 비교 말이다.

 

그럼에도 나이든 어르신을 공경해야하고 가족들 생계와 요즘 문화


따라잡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이 땅에 현대의 4~50대 남자들은 외롭다.


알아주는 이도 지나온 날들을 보상해주는 이도 없고,


그저 일터로 의무로 더한 책임을 떠맡는다.


이젠 여자해방이란 말이 어색할 정도로 개방되었고. 역차별 운운하는


남자들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로 여자세상이 되었다.


여자세상!


과거엔 꿈도 못 꿀 엄청난 문구가 아닌가?


이 여자세상이 와서 이 땅의 여자들은 살맛이 났다.


티비만 틀면 남자와 동등한 자격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맘에 드는 남자


동료 그것도 능력 있는 후배 남자동료에게 먼저 프러포즈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능력 있는 현대여자의 표상인양 선전해댄다.


개방된 성의식과 부엌으로부터 구속되지 않고,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가활용이나 취미로 직장을 구할 정도로


여유를 찾은 여자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톤이 높아지고 있다.


여자들의 지위 향상이 제대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지위향상이고 높아진 위상으로 인생을 어찌 살아야 하는


지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들 스스로도 혼란스러워 한다.


그저 귀찮은 일을 피하고 맘대로 나돌아 다니는 게 해방인가?


남자들처럼 마시고 먹고 하고 싶은 일 맘대로 하는 게 해방인가?


암튼 여자들은 세상사에 훨씬 유연하게 적응한다.


남자들은 고집이나 체면 때문에 혹은 그리 완고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인지 좀처럼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배워온 사회 규율이나 방식이 이젠 틀렸다고


이 사회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여자가 확인시켜 주고 있다.


남자들이 동안 알아온 자기 아내는 조신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자기 의견 개진수가 많아지고 반대의견을


말하면 '당신은 그래서 구식이야' 라고 타박하기가 일쑤인 것이다.


*


잘 살아가던 어느 집이 있다.


아들 딸 두고 자기의 일 외에 사회봉사 활동도 많이 하고 살아가는


부부이다.


누가 봐도 다정하고 부러운 부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의견 다툼이 많아졌다.


사회활동으로 잦아진 회식이 밤늦게 이어지기 일쑤이고,


그것을 참지 못하는 아내 때문이었다.


한번 삐걱해진 사이는 잦은 충돌을 가져오고, 마침내 아내는 집을

 

나갔다.


안사람이 없는 집안.


얼마나 황당하고 황량할 일인가.


아직 학교에 다니는 아들딸은 말이 없어지고,


일하고 귀가하면 썰렁한 집안에 혼자 밥을 해먹다가 그도 귀찮아 먹다가


말다가..


애들은 어떻게 밥을 먹고 다니는 건지, 학교에나 제대로 다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쩌다 물어보면 “먹었어요”.


"용돈 주랴?" 하고 물으면 “됐어요” 등의 단답만 듣게 되고,


어느 순간 자신과 애들과 대화가 단절 되었고 애들도 은근히 자신을


원망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오늘도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술 한 잔을 마시러 대폿집을 들른다.


평소엔 그리 많던 지인들도 떠오르지 않고, 그 많던 전화도 요즘은


잠잠하다.


대폿집 구석에 앉아 막걸리에 안주를 시켜놓고 혼자 마시려니 기가


막혀온다.


자신이 잘못해왔다는 회한이 머리를 스친다.


그러나 무엇을 그리 잘못한 것일까?

 

집사람이 가출할 정도로 자신이 잘못한 것일까를 생각자면 답이


안나온다.


보고 싶은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이 동시에 밀려온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걱정도 된다.


잠은 제대로 자는 건지.. 밥은 제때 먹는 건지.. 아예 나와 자식들은


잊어버린 건지 궁금하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래 전화라도 해봐야지”


어느새 바뀌어버린 전화번호.


친척집들은 다 연락 해봐도 왔다는 말은 없고 달리 갈 데도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는 건가.


그새 남자가 생겼던 걸까?


아니면 예전부터 나 모르게 만나던 남자가 있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러다가 주위에서 소곤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누구 부인은 남자가 생겨서 집 나갔다며?


이리되면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도망치듯 나온 대폿집.


더 이상 갈 곳도 없다.

 

집에 돌아온다.


불이 꺼져있는 거실 안으로 억지로 몸을 집어넣고 잠을 청해본다.


창밖 가로등 불빛이 그리 강했었나.


커튼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불빛.


어찌어찌 아침이 오면 뭐하나


살아있음이 고통이고, 깨어 있음이 고문인 생활에 활력이 있을 리 없다.


몇 달 후 딸에게 졸라 아내의 새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찾아가 애걸하고 문자로 앞으로 무조건 의견을 존중한다는 맹서를


수차례 한 후에야 아내를 찾아온다.


남자는 생각한다.


“나는 여태껏 잘못 살아왔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잘 해야 한다는 건 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다”


**


참아주지 못하는 사회.


참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


과연 이 땅의 요즘 여자들은 해방구에서 참 자유를 누리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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