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별거 있어?"
마흔의 중반을 넘어선 그녀가 얼마 전 중학교
동창모임에 갔다 와서 맘에 맞는 동창생들과
밤새 토론을 벌였다더니 그런 결론을 낸 모양입니다.
*
그녀의 일생은 고단했습니다 .
가난한 농군의 딸로 태어나 위아래로 첩첩산중인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고사리 손에 인형대신
호미에 낫 들고 집안 일 도와야 했고,
그만그만한 동생들 업어 기르느라 국민학교도
아홉 살에 들어갔습니다.
하교 후에는 동생들을 돌봐야했고,
꼬박꼬박 내야하는 육성회비에 납부금을 보태느라
4학년인가부터는 잔디씨 채취해서 시장에 내다
팔 정도로 억척이었답니다.
흔히 그런 환경에 처해진 사람들이 그러하듯
철이 빨리 들었고,
그럴수록 감수성은 발달하여 글 쓰기에 소질을
보이더니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문광부장관상까지
받아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학교 공부도 잘 했겠죠?!
그러는 사이에도 가정형편은 좋아지지 않아
"계집애가 일찍이 살림이나 배우고 집안 일이나
돕지 무슨 학교냐"며 그녀의 부모님이 중학교를
진학시키려 들지 않자 골방문을 잠그고 식음을
전폐하고 3일 동안 농성을 하는 바람에 중학교에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고,
고등학교도 수업료가 적은 야간학교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러한 그녀의 눈에 같은 또래의 사람들이 모두
설익은 감처럼 풋내 나고 하는 짓이 어린애처럼
유치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를 버티게 했던 그녀의 꿈과 이상은 종종
현실과 괴리를 가져와 그녀를 힘들게 했고,
평범한 사람과 만나 결혼하고 아들딸 낳고
현실에 부대끼며 살면서 마흔이 되던 해
많이 허탈해 했었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기도 겁나고 되돌아서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마흔 몇해.
이제 특별히 설레일 일도 . .
특별히 가슴 벅찰 일도 없는 오늘.
그녀가 푸념처럼 하는 말.
"인생 뭐 별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