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다투어 피고 매일 송홧가루 날아드니 바야흐로 꽃들의 계절이다.
일찍 핀 벚꽃 배꽃들이 지고 난 들판엔, 유채꽃 갓꽃 자운영 복숭아꽃 등등이
저마다의 자태를 자랑한다.
해마다 풍매화의 계절이 오면 유채와 갓 소나무가 노란꽃가루들을 바람에 일제히
날려보내 산과 들이 가까운 농촌에서는 차량 장꼬방 가리지 않고 더욱 노란옷을
입기 마련이다.
어느날 팔순의 할머니가 박스에 이것저것을 가지고 허겁지겁 사무실을 찾아왔다.
거기엔 각종 파스에 복용하던 약봉지에 농약병까지 들어있었다.
그것들을 풀어 헤치며 "시상에 자식없이 혼자 산다고 그래야 쓰것이요잉.
나 혼자 있다고 옆집에 사는 모씨가 틈만 나면 우리집에 들어오고 어떨 때에는
자고 있어도 방에 들어와 내 약들을 훔쳐가고 쌀까지 가져가 버린단 말이오"
"아니 세상에 누가 먹는 약을 다 훔쳐간단 말이오?"
.
.
.
구체적 묘사와 논리는 정연한데, 알고보니 치매증상이다.
문제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정말 억울함을 믿는 확신범이라는 사실이다.
본인은 실제 상황이라 믿고 있으나 아무도 믿어주지 않으니 얼마나 속 터지고
억울한 일일 것인가?!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한동안 주먹으로 치고 퍽퍽 우는 모습을 보여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할머니는 오늘도 유효기간이 지난 파스박스를 가지고
오늘도 찾아온다.
"긍께 옆집사는 놈이 내 물건을 훔쳐간당께...."
어느날 지팡이를 끌듯이 짚은 팔순 할머니가 사무실을 찾았다
"그란디말이요잉 누가 우리집 장독에다가 농약을 뿌렸어라우"
"아니, 누가요?"
"우리집에 자주 와 쌀도 훔쳐가고 돈도 훔쳐간 놈이 있어라우.
그놈이 인자는 나를 죽일려고 장독에다가 농약을 쫘~악 뿌려놨드랑께.
동네사람들한테 물어본께 노란 제초제가 있다고 합디다"
"그라믄 할머니 집에 가 봅시다"
가는 도중 내내 차내에서 내내 신세한탄과 억울함으로 눈물범벅이다.
결론은 어찌 됐을까?
장독엔 정말 노란 가루들이 가득했다.
뿌려놓듯 노란빛깔의 가루들이 장독을 꽃으로 만들어 놓았다.
송홧가루 꽃밭이었다.
물론 아무리 설명해도 잘 안들린다고 자신의 주장만 하는 할머니와는
해결이 안되어 핸드폰 3번에 저장된 큰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안심시킨 후
마감했다.
자식들이 도시로 도시로 떠나고 난 시골집에는 칠순팔순을 넘은 노인들이
홀로 지내고 있다.
여자노인이 나이를 먹으면 대부분 남편은 저 세상으로 가고 없고,
이웃의 도움을 크게 기대할 바 없으니 이런 일이 다반사이다.
치매증상 중 이웃사람이 자신의 물건을 훔쳐간다는 착오는 흔한 일이라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양심 없는 자식들은 객지에 흩어져 산다는 이유로, 혹은 모시려해도 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던 곳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이유로 치매노인을 방치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치매판정이나 요양시설로 보내는 비용이 부담스러워, 어쩌다 본가에
내려오면 이웃들이 저마다 병원으로 모셔가라고 설득하고 애원해도 이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이웃에 사는 죄로 자신의 훔쳐간 물건 내놓으라며 오늘도 집으로 찾아와 악다구니를
쓰고, 내놓기 전에는 못 간다며 마당에 뒹굴어도 이웃은 해결책도 없고 언제까지
이런 일을 당해야하는지 모를 암담함으로 답답할 뿐이다.
주무부서 보건소에서는 인력 탓인지 치매에 대한 인식부족 탓인지 치매노인을..
그것도 문제를 일으키는 치매노인을 발견하고 통보해도 출동하길 꺼려한다.
군 행정을 맡고 사회복지계를 가진 군청과 주민 가까이 나와 있는 읍면사무소는
어떠한가?
거기에도 여전히 인력탓 등으로 관내 치매노인들의 숫자와 그 피해에 대해선
눈을 감고 있다.
실정을 모르는 국회에서는 맨날 복지예산 늘리기에만 신경쓰며 국민들의
환심을 사고 있으나, 그 예산들은 어디로 가고 정작 신경써야할 치매노인들에
대한 대책은 없다.
관련기관에서도 인력 탓만하고 신경을 쓰고 있지 않으니 이게 올바른 나라인가?
누구 말대로, 이게 나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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