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
나는 칠흑같이 어두운 겨울밤을 달리는 군내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다.
눈이 유난히도 많던 그 해 겨울.
경기도 용인 땅에는 오후부터 날리던 눈이 밤이 되자 함박눈이 되어 날리고 있었다.
어디에 마땅히 이름 붙이기에 뭐한 나이 스무 해.
당시만 해도 운송수단 형편이 별로 좋지 못했는데 그날따라 눈
때문이었던지 20:30발 군내버스가 22:10이 되어서야 터미널에 들어섰다.
전면 유리창에 매직으로 조잡하게 행선지를 적어 걸어놓은 버스는,
차량 철판밑단과 바퀴사이에 눈 고드름을 잔뜩 달고서
몇 번 역겨운 트림을 하더니 서서히 터미널을 빠져 나갔다.
아마도 마지막 차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귀가시키기 위한 행정기관과 버스회사의
배려 때문이였는지, 노면은 얼어서 자가용은 통행할 엄두를 못 내던 길을 군내버스가
허리까지 몸이 빠지던 눈길을 용케도 헤치고 둔중한 엔진음을 울리며 미끌거리는 길을
가고 있었다.
구불구불하고 불빛 한 점 없는 산길을 헉헉대며 1시간여를 달리자 나는 차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벌써 도착했어도 될 만한 길을 아무리 눈이 와도 그렇지 40여분 길을 1시간반여를 달려도
불빛 새어나온 동네하나 볼 수 없고, 그나마 어쩌다 정차한 정류장에서 삶에 찌든 때를 덕지덕지
붙인 촌로들 지팡이에 의지해 두 세명씩 내리자 나중엔 정류장이 나와도 그냥 지나치기를 여러 번,
지금 이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종국엔 언제 멈출런지도 모르는 채 버스는 어둠속을 쿨쿨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밖을 내다보면 차창에 하얗게 달라붙던 함박눈송이.
차량 라이트 속으로 무작정 달려들던 눈의 군무.
'에이 차라리 잘되었다 갈 데까지 끝까지 가보는 거다.
어차피 날 기다려 줄 이도.. 반겨줄 이도 없잖은가'
버스는 거기에서 한참을 더 가 2시간 15분이 흐른 뒤에야 종착지라며 가쁜 숨을 토해 놓고 있었다.
"아이~ 뭐해요 여기가 끝인데 내리셔야죠," 세월의 흔적이 머리를 하얗게 변색시키고
얼굴 여기저기에 도랑을 만들어 논 퉁명스러운 말투의 늙수레한 가죽모자 기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뭐라고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한 난 표정 없는 얼굴로 내리고 만다.
기사는 대충 문을 잠그더니 정해놓은 집이였던지 정류소 옆 허술한 토담집으로 얼릉 들어간다.
온 대지가 하얀 들판엔 바람이 차오고 , 산 중턱 촌락에서 불빛 몇 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행인지 먼저 내린 60객이 훨씬 넘은 영감이 걱정스런 시선으로 무릎까지 찬 도로 위의 눈과,
얇은 가을점퍼를 걸친 나를 번갈아 보더니 몇 걸음 옮기던 발길을 되돌려 다가온다.
"차를 잘못 타신 거요? 어디 갈 데가 없수? 이곳엔 이것이 마지막 버스였고 내일은 첫차가
본래 여덟신데, 저녁에 여기 있으면 얼어 죽을 텐데 어쩌지?
글고 이 상태로 봐선 내일도 버스가 언제 갈지도 모르는데...더우기나 여기는 여관도 없는
산골인데 말유 " "어디 갈 데 없으면 나 따라 가실라우?"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어렵게 입술을 떼어놓던 나는, "녜" 하고 대답하고 만다.
내겐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 영감을 따라가든가, 들판에 서서 고스란히 눈을 맞고 있던가, 그러다가 그대로 굳어
버리던가 였으니까.
눈이 쌓여 길과 논두렁이 구별이 안 되는 길을 영감이 앞장 서 걸었다.
하늘엔 별 하나 안보인 한밤중의 눈의 시위 속을 한걸음씩 옮겨 가는데, 좁은 논두렁
길이였던지 영감이 가는 길을 따라간 길을 그대로 밟아도 이따금씩 난 언덕배기 아래
키가 넘을 듯한 눈 속으로 풍더덩 빠지고 만다.
그럴 때마다 손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진 영감의 손은 나를 어김없이 꺼내고,
눈투성이가 된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또 그 길을 걸었다.
한 20분여를 오르막진 길을 걸었을까?
녹슬은 양철대문을 열고 영감이 들어서자, 아홉 살 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마중 나온다.
"할부지 인자와?" 하고는 뒤따라온 나를 위아래로 몇 번 훑어 보더니, 토방에 벗어 논
영감과 나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안방으로 먼저 들어간다.
방안에는 그보다 더 서너살 많아 보이는 사내아이가 두터운 솜이불을 덮고 있던 몸을
내놓기 싫은 듯 "할아부지 밥은?" 하고 다시 몸을 이불 속에 묻는다.
"아가, 얼릉 가서 방에 불 좀 더 넣어라, 가마솥에 물 좀 더 붓고 끓을 때까지 불 때.."
그제서야 이불속에서 몸을 빼낸 아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단칸방을 석유호롱불이 그을음을 내며 밝히고 있었다.
방은 언제 불을 넣었는지 냉기가 사람 덕을 보고 있었고, 때 묻은 이불깃은 언제 빨았는지
검은 때가 덕지덕지 끼어서 까맣게 변해 있었다.
아이들은 까만 눈자위가 유난히 큰 두 눈으로, 어디서 불현듯 나타난 외지인을 신기한 듯
가끔 몰래 훔쳐보다가 눈이 마주칠 량이면 얼른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몰래 훔쳐보곤 했다.
이불속으로 한사코 내 언 몸을 밀어 넣던 영감이 잠시 기다리라더니, 밥을 내어 왔다.
쌀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검정보리밥.
어디서 났는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는 된장국을 짠 간장 한 종지와 함께 내어 오더니
같이 먹길 권한다.
"밥도 안 먹었지? 우리도 안 먹었으니까 같이 먹게 어여 와"
놋숟가락과 변색된 스텐젓가락을 들고 언제 먹었는지도 모르는 밥을 목구멍에 밀어 넣어 본다.
깔깔한 밥이 혀 안에 몇 번을 구르더니 목구멍을 어렵게 넘어 간다.
그나마 따순 물이 나에겐 반찬이었다.
그네들은 찰기라곤 없는 보리밥과 간장과 묘한 냄새가 나던 된장국을 오고가는 숟가락이 부산하였다.
말 한마디도 없이 고개 수그리고 먹던 아이들과 영감이 고봉으로 가득 담은 밥그릇을 다 비우고서야
내 밥그릇과 내 숟가락을 쳐다본다.
"찬이 좀 그렇지? 우리가 사는 형편이 그래서 그래.
오늘 장에 간 김에 뭐 좀 사 올렸더니 물가가 원체 비싸야지 원.
한밤중에 반찬을 할 수도 없고 말이여. 그래도 먹어 두는 것이 나아. 아직도 몸이 안 풀렸구만."
영감은 내가 밥맛을 거의 모르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난 이틀 전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게 된 순간부터 의식이 맑아 오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세상이
하얗고 투명한 빛으로 보이기 시작했었다.
밥상을 마주하니 된장국에서 풍기는 냄새와 깔깔한 밥이 혀와 코를 자극할 뿐이였다.
넷이 앉아 있기에도 가득 찬 단칸방에 깔려있던 큰 솜이불 하나로는 네 사람이 덮기에 부족했다.
몇 번을 내게 뭘 물어보려다 참는 기색을 보이던 영감이 방에 온기가 들어오자, 젤 아랫목에
나를 눕히더니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을테니 어서 자라고 낡아서 솜이 금방이라도 나올듯한
카시미론 이불과 요를 있는 대로 내어와 깔고 나를 덮어준다.
그리고 곧이어 들리던 영감의 기침소리와 앓는 소리.
어찌어찌 잠이 들었는데 어렴풋이 누군가 나를 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잠시 동안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가 혼란스럽다가, 먼저 귓전으로 영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애들아 이러다 죽을지 모르니깐 어서 주물러"
자다가 보니 내가 아무런 미동도 안 해서 생의 고비를 넘는 줄 알았나보다.
영감은 다리와 팔을 주무르더니 내가 인기척을 하니 그제서야 후유~ 하고 한숨을 내쉰다.
"뻣뻣이 굳어 가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어디인지도 모르는 쾌쾌한 냄새와 가난이 붙어 있는 촌가.
그리고 애들을 맡아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영감의 사연.
뭔가 철사줄인지 가시덤불인지가 얽혀서 나를 조여 매는 덤불 속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다
동창이 밝아옴을 느꼈다.
토방에 벗어 논 신발을 가득히 채운 눈 .
마당엔 눈이 깊이 모르게 쌓여있고, 지붕은 머리에 흰 눈 무더기를 이엉처럼이었다.
아침 역시 간장뿐인 조반.
그 걸로도 만족한 미소를 띠는 영감의 속내를 다 알 수는 없어도, 이런 사소한 일에 ...
살아 있다는 것에 행복을 찾으려는 영감의 속내를 어쩌면 알 것도 같았다.
몇 번을 만류 하는 것을 "나중에 살아 있고, 어딘가에서 이 시기를 벗어나서 내가 숨 쉴
공간을 찾으면 다시 찾아 오겠노라" 고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이
빠져나온 촌가 여기저기 뒤편에 세운 굴뚝에서 이제 아침을 하는지.. 난방을 하는지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눈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 방긋 웃는 햇살을 반사해내고 있었다.
'내가 살아 있는 건가..
내가 살아 있는 건가..
그럼 여긴 어디고 난 또 어디로 가야하나...'
갈 곳도.. 반길 이도 없는 처지에 갈 길이 막막했다.
도로 위에 녹고 있는 눈을 쟁기로 밭갈이 하듯이 버스타이어가 갈고서 오후 1시가
되어서야 정류소를 방문했다.
지금은 그곳이 어디인지..
과연 그 영감은 살아 있기나 한지..
그리고 이제는 장성해서 한 가정을 이루었을,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사내애들은
어느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혹,
그 영감님은 보은할 길이 없는 내게 주위에 그 정을 베풀어 주라고 꿈길로 와 가르치고,
거치른 광야에서도 썩지 않는 소금처럼 제 빛깔을 간직하려는 나의 모습을 저 세상에서
대견하게 바라보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