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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가기

백련사를 다녀옴

by 선 인장 2007.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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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륵사를 거쳐 강진만을 구비돌아 이르는 곳에  [백련사]가 있었다.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이 어미 자궁처럼 감싸안은 곳.

사찰  뒤로는 동백나무 후박나무 차나무가 바야흐로
유록(幼綠)에서

 

연녹(軟綠)으로 옷을 갈아 입고 있었고, 앞으로는 강진만의 바다가

 

출렁대고 있었다.

2006년의 5월5일은 어린이날이자 석가탄신일.

산길을 올라서 꽤 넓은 공터에 차량들이 가득하다.

범종이 청아한 음을 울리더니, 곧 이어 법회가 열렸다.

종교의 큰 문제로는 자신들만의 유일신 절대신 신앙으로 타 종교나

 

여타 신을 부정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여서 항상 실망스러웠는데,

오늘 백련사에는 천주교출신의 수녀님 기독교 목사님이 오셔서

 

같이 축원해 주셨다.

조계종이 종교의 벽이나 한계를 뛰어넘어 타 종교와의 교류를

 

선포한지 몇 해 되었어도, 여전히 남아 있는 우리나라 유교의

 

뿌리에서 오는  제사 등의 풍속만큼 타종교를 인정한다는 건

고치기 어려웠을 터인데, 타 종교 지도자들이 같이 예불 드리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였다.

대웅전 법회 때 마르고 키가 큰 젊은수녀님이 자꾸 내 주위를

서성거려 속으로 괜스리 좋았다.

물론 나 혼자만의 착각일게다.

아직 귀밑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여드름이 만든 골을 화장으로도

 

다  커버하지 못한 아가씨가  머리는 새치 희끗희끗하고 이마에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아저씨를 보고 매력을 느꼈을리가 없다.

더우기나 성녀의 길을 가고 있는 수녀님임에랴...

그래도 좋다.

이것이 곧 내가 살아 있음이며,

아직은 내가  세상과 이성에 둔감하지 않을 나이란 게 좋다.

대웅전에 합장하고 고개숙이니 부처님의 존안이 빙그레 웃는 듯 했다

부처님 오신날에 어린이 날이라,  나 또한 어린애가 되고 싶었다.

부처님의 사랑받는 어린애이고 싶었다.

내가 밟히지 않으려면 상대를 밟고 올라가는 사바의 세계에서

 

몸부림치는 중생이 아니라, 부처님께로 이르는 길을 연등으로

 

인도받아 그님의 발아래 엎드려 존경하는 맘만 가득 안고 사는 중생이고

 

싶은 맘이 오늘따라 간절해졌다.

 

 

 

 

 

백련사 소개:


백련사는 역사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람이다. 고려후기 백련결사의 터이면서 18세기에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가 완도 신지도에 귀양차 왔다가 이 절에 들러  만경루와

 

대웅보전의  두 현판의 글씨를 남겨 놓았고,  백련사 건너 편에 귀양온 다산이 즐겨 찾았던 백련사.

 

중국에 숭산 소림사가 있듯 한반도에의 끝에는 만덕산 백련사가 있다.


만덕사-백련사로 사찰의 명칭이 바뀌어 왔지만 고려의 8국사의 도량이었고,

 

왜군이 쳐들어왔을 때 스님들이 나라를 위해  의병으로 활동했던 사찰로 유명한 곳이다.

백두의 산맥이 남으로 달려와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속리산,마이산으로 이어지고 노령을 지나

 

추월산, 무등산, 월출산으로  이어지며 월출산에서 4∼50리를 달려와 산맥이 낮고 평평해지니

 

유령(시웃재라 불리움)이 되었고, 봉우리가 우뚝하게 하늘로  솟아오른 곳이 있으니

 

이곳을 만덕산이라 부르며  백련사는 만덕산이 두팔로 감싸안은 듯 그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절에서는 보통 대웅전을 바로보고 들어가도록 되었지만, 백련사는 만경루가 대웅전을

 

가로막아 옆으로 돌아 들어가는  것이 이색적이다.

 

유배의 시름 달래던 다산 정약용. 백련사에서 오솔길을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인  다산초당이 나온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는 만덕산 기슭의 지근에 있는 것이다.

 

반대로 다산초당 천일각 옆으로 빠져 산길로 들어 만덕산 등성이를 세 굽이쯤 넘으면

 

 백련사 서쪽 옆구리로 내려서게 된다.

해탈문을 대신하는 동백숲.

 

백련사의 명물중의 명물은 동백숲이다. 절 입구에 다다르면  300m의 긴 동백숲 터널을

 

지나게 된다.

 

사철 청아한 빛을 발하는 동백숲이 이 절의 해탈문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절 주차장에서 백련사까지 가는 좌우와 절 서쪽 행호토성 너머까지 3천여그루의 동백나무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된 이 동백숲은 12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여

 

이듬해 3월 중순부터 4월 초순까지 절정을 이룬다.

 

꽃이 가장 예쁠 즈음  통체로 떨어지기 때문에 나무에 달려 피고 땅에 떨어져서도 핀다는

 

동백꽃은 3,4월이면 부도전 부근 바닥을 붉게 채색한다.

이곳 동백나무들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를 와서 심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는데,

 

근처에는 후박나무, 푸조나무, 비자나무숲과 더불어 송과 백, 소(가는대나무)와 탕(왕대)과

 

뒤섞여 창취하되  4철의 변화가 없이 한결같은 절경을 보여준다.

천년 고찰의 가람과 구강포 바다(강진만)가 동백숲과 더불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백련사.


백련사에서는 동백숲을 보전하고 환경과 인간이 공생하는  가치를 넓혀 가기 위해

 

2001년 봄부터 매년 동백축제를 벌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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