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이 져가는 화단을 돌아 사무실 뒤편 회령진성 오르는 길엔 아카시아가 하늘을 덮고 서 있습니다. 아카시아 가지마다 하얀 밥알 같은 꽃송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가,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밥알들을 축복처럼 쏟아냅니다. 그리고 코끝을 자극하는 찐한 향. 아, 언제였던가요? 언제나 하얀 쌀밥만을 지겹게 먹고 살 수 있을까가 아득하기만 했던 그 시절. 땔나무를 하다가.. 깔을 베다가 때 늦은 시간에 배가 고파 올 무렵, 야산과 냇가에 하얗게 달린 그 아카시아 꽃잎을 보면 잠시나마 그 허기를 잊었던 시절이 있었으니 이렇게 같은 하늘을 이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식구들은 그런 정서를 아는 이, 몇이나 될까요? 겨울이면 으례히 짚가마니를 짜서 5일장이 열리는 곳까지 십리 산길을 들쳐 메고 가서, 한 가마니당 5백원씩 받았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점심은 으례히 고구마로 때우고, 하루종일 골방에서 가마니를 짜내던 그 시절. 여름이면 보리쌀이 퍼지라고 미리 삶아 천정에 걸어 놓는데 , 왜 그리 파리는 꼬이던지요. 파란 플라스틱 바구니에는 파리가 엉겨 붙어서 아예 까만 바구니가 되곤 했는데, 그 보리쌀 삶아 놓는 게 먹고 싶어서 물건을 이것저것 올려 놓고 올라서서 내리다가 간혹 엎지르기도 하고 , 바구니를 통째로 깨먹기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보리쌀밥을 씻지도 않은 손으로 몇 주먹 퍼먹다가 그 빈자리를 어머니에게 들킬까봐 밥을 손으로 들어올려서 살살 부풀게 만들어 놨던 시절 . 그 시절에 제일 먹고픈 건 오직 하얀 쌀밥이었습니다. 형편이 나은 부잣집 친구집에 가서 먹어본 흰 쌀밥은 어찌나 그리 달고 맛나던지, 아까와 씹지를 못하고 입안에 굴리고 있으면 혀로 저절로 녹아들던 쌀밥. 그 쌀밥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 생각해보세요. 마치 한 여름날 변덕스런 하늘이 쏟아내던 우박처럼, 아니면 고즈녁한 겨울저녁 소피를 보러 나온 마당에 내리던 함박눈과도 같은, 아니아니 한 달에 한두 번 동네에 오던 뻥튀기 구경처럼 신비롭고도 경이로운 광경입니다. 어릴 적 동네에 오는 뻥튀기 아저씨는 마치 마술사 같았죠. 사정이 나은 집은 묵을 쌀을 맡기고,사정이 좀 안 좋은 대부분의 집은 옥수수와 명절 때 남은 떡이나 쑥떡을 말린 걸 뻥튀기 맡겼는데, 그 여름 뙤약볕에서도 동네어귀 감나무 밑에서 장작불로 기계를 달구면, 전부 눈은 기계에 가 있고 손은 양쪽귀를 막느라 두려움과 설렘의 흥분으로 가슴은 쿵쾅이길 반복하곤 했었죠. 주인이 자루에 담아가기 전에 몇 주먹씩 그걸 훔쳐 먹어도 다들 봐주는 미덕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기계에서 흘린 것도 있고요 ㅎㅎ. 그 하얀쌀 밥알들이 하늘에서 후두둑 후두둑... 정말 멋진 광경이겠죠? * 아카시아 향은 원체 향기가 찐해서 멀리 있는 꿀벌들을 불러 들인답니다. 그런데 그 보담도 더 찐한 향을 내뿜는 게 같은 가시목과의 찔레꽃입니다. 찔레는 꽃이 피기 전 연한 줄기가 나오면서 그 줄기가 당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배고픈 시절 허기를 달래어 주던 고마운 식물이었습니다. 난 아직도 찔레꽃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먼저 나오고 가슴이 뭉클해진답니다. 그저그저 찔레줄기를 따고 있는 자신의 모습 외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무아지경의 상태로 잠시 빠져드는거죠. 그 찔레를 꺾다가 가시에 찔리기도 하고 꿀벌에 쏘이기도 하고, 비얌이라도 근방에서 볼라치면 머리털이 곤두서는 걸 느끼면서도 부드럽게 살살 벗겨지는 새 찔레줄기의 맛을 잊을 수 없어 또 다시 찾아가곤 했었죠. 지금 어떤 과자가 그 맛을 낼 수 있을까요? 지금 꺾어 먹으면 그 맛이 나질 않는 게 당연한 일인데도, 그때의 달착지근하면서도 쌉스름한 맛은 잊혀지질 않아요. ** 보통 찐한향 두가지를 합쳐 놓으면 그 향들이 본래의 향을 잃게 되거나 아주 역겨운 향이 되어버리는데, 등산로 양켠에 아카시아 나무와 찔레꽃은 같이 피어서 각기 독특한 향을 풍기는데도 전혀 역겹지도 향이 없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로의 향이 상승작용을 하여 더한 향취를 품어댄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지식과 흰 쌀밥을 포식을 해도 맛을 못 느끼고, 아무리 먹어도 웬지 허기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오늘날 필요한 이가 이와 같지 않을까요? 같이 있음으로써.. 같이 피어 있음으로써 나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나를 더욱 인간다운 향내가 폴폴 나게 하는 친구. 그런 사람이 아쉬운 시절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