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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가기

술에 관대한 우리 사회

by 선 인장 2012. 8. 7.

 

 

 

우리 사는 사회는 술에 너무 관대하다.

 

밤 늦은 거리에는 술에 취해 쓰러진 사람’ ‘길바닥에 자는 사람’ ‘토하는 사람’ ‘악을 쓰는 사람

 

 ‘우는 사람’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특히 누구나 창을 여는 계절인 여름엔 가장 심하여 어디가나 그런 광경을 흔히 보게 된다.

 

그러나 술에 마셨다는 이유로.. 취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실수와 잘못이 용서되는 게

 

동양의 한자문화권의 특징이고 그 중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통된 정서가 아닌가한다.

 

실지로 법정에서 재판을 때 "당시는 술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라고 하면 그  죄를

 

용서받고 집행유예 등으로 풀어주는 경우가 많고,  큰 죄를 지었어도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는

 

이유로 감형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범죄자들도 인터뷰하면서 곧잘 "술에 취해서 실수를 했네"  "당시는 술에 취해 있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등등의 궁색한 변명을 하지 않던가?

 

누구나 죄를 지으면 거기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게 인간사회의 정의일진대,

 

술을 마시고 과잉 행동했다고 면죄부를 주는 게 옳은 일일까?

 

이렇게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근거는 사전에 범죄를 기도하지 않았고, 순간적인 감정으로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기 때문에 책임능력이 떨어져 큰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죄를 저지르려고 일부러 술을 마시고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런 주관적인 범의를 판단할 기계도 없고 법관의 능력으로도 알 수 없다.

 

 

 

오늘도 술에 취해 휘청이는 사람들.

 

왜 그럴까?

 

그리고 언제부터 사람들은 술을 마시게 된 걸까?

 

그 기원은 아무도 모른다.

 

기록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인류가 그 옛날 수렵과 채집시절 동굴생활을 할 당시 술 항아리로 보이는 벽화가 발견된

 

걸로 보아 오래전부터 인류는 술을 마셔왔다는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혹, 어느 작가의 상상대로 원시 밀림지대 물 고인 웅덩이에서 원숭이들이 먹다버린 사과 등이 발효된

 

것을 원숭이들이 마시고 신나하는 것을 인류가 우연히 맛보고 술이란 걸 알게 되었을 수도 있겠고,

 

채집과 동굴생활을 할 때 흙 항아리에 담아둔 과일이 자연발효된 걸 맛보고 술의 마력을 알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 술을 마시는 문화는 농사문화와 더불어 감정적인 민족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위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던 선조들은 농사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대부분의 농가에서 막걸리나 내린소주 등의 밀주(密酒)를 만들어 마셨고,

 

손님이 오면 그 술을 내어 놓거나 가게에서 사와서 대접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감정적인 민족성은 기분이 좋아도 나빠도 술로 기분을 더하거나 푸는 문화로 술을 자주 찾게 만들었다.

 

또 하나는 환경적 요인이다.

 

과거 거리에서 누구들 만나면 집에 들이지 않고 부담 없이 얘기를 나누는 곳은 다방이었다.

 

그곳은 사업얘기도 하고 선을 보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그뿐인가?!

 

역전이나 터미널 근방의 다방은 저녁 마지막 차를 놓친 사람들이나 갑자기 집을 뛰쳐 나온

 

사람들에게 잠시 피난처이기도 했다.

 

새벽 2시에나 4시에 역에 떨어지고 아침 6시나 7시에 첫차가 연결된다면,

 

이들이 그 시간에 여관이나 여인숙을 찾을 것인가?

 

거기에 더하여 비가 오는 날이나 계절적으로 찬바람 쌩쌩 부는 한겨울이면 어쩔것인가?

 

돈이 귀하던 시절이라 여관이나 여인숙을 찾기도 쉽지 않고, 비바람을 피할 장소도 쉽지

 

않게 된다.

 

이럴 때 다방은 그들에게 휴식과 비바람을 피하는 안식을 주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차츰 다방이 쇠퇴하기 시작한다.

 

거기엔 핸드폰 보급이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어느 지점에서 만날 약속을 하고 그곳에 마주앉아 얼굴을 보며 얘길 하지 않아도

 

하시라도 얘기를 할 수 있고 심지어는 화상으로 만나니 굳이 담배연기 뿌연 다방에 모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던 중 다방은 다방대로 살아남으려고 젊은층이 모이는 곳엔 음악디제이가 신청곡을 불러 주거나

 

음반으로 들려주는 곳으로 변모해 갔고, 중년이나 노년층을 주고객으로 사무실 등으로 배달하는

 

곳으로 변모해갔다.

 

그 과정에서 남자들의 그릇된 욕정이 더해져 배달하는 아가씨가 속칭 2차를 나가는 일이 잦아지자

 

한때 사회문제화 되기도 했다.

 

도회지는 물론 시골 면단위까지 3~4개씩 있었던 다방문화가 퇴폐로 인식되고,

 

이용객의 감소에 따른 폐쇄가 잇따르자 사람들은 만남의 장소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이젠 지인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거나 연인을 만나도 차분히 마주앉아 얘기할 공간이

 

없어져 버렸다.

 

 

 

흔히들 여자는 분위기에 약하고 남자는 아주 무딘 걸로 알려졌지만,

 

사실 보통의 남자들은 평균적으로 훨씬 낯이 얇고 분위기를 따진다.

 

여자들이야 어느 공간이든 어떤 소음과 시끄러운 환경 하에서도 자신들의 의사를 잘 전하고

 

소통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여자들은 리이든.. 사무실이든.. 가게이든..  나이의 적고 많음, 배움의 얕음과 깊음, 교양의

 

정도를 떠나 언어의 소통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음을 유감없이 발휘하곤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여자들의 수다는 누구나 공감하는 일상적인 대화나 '누구는 어쨌다네'

 

'어젠 무슨 일이 일어났다네' '누구는 누구랑 어쨌다더라' 등의 주변의 상황에 대한 얘기들이

 

대부분인데 화젯거리가 좀처럼 끊기는 법이 없다.

 

반면에 남자들은 만나면 달리 할 말이 없다.

 

하고픈 말이 많아 만났어도 서너마디면 말이 끊겨 버린다.

 

그런데 이러한 남자들도 물을 마주하고 마주 앉으면 말들이 이어진다.

 

커피든 술이든 물은 남자들의 혀를 부드럽게 해 주고 대화를 이어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여자에게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남자들은 물을 마시면 대화가 그런대로 잘 이어진다.

 

그런데 다방이 없어졌으니 난감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지금은 '만나서 차나 한 잔 하자'에서 '만나서 술 한 잔 하자'라고 말한다.

 

그 얘기는 차를 마시러 만나자는 말도.. 술을 마시게 만나자는 말도 아니다.

 

얼굴도 보고 싶고 하니 만나서 대화를 하자는 말인 것이다.

 

거기에다가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더 좋을 욕심으로 말이다.

 

 

 

도시화로 벌집처럼 작은 공간들 속에서 먹이를 물어날리며 새끼들을 키우고 내일의 풍요를

 

꿈꾸는 도회지 사람들이나, 농사에서 먹이를 구하는 농촌사람들에게도 필수적인 차량문제까지

 

더하니 술과 자동차는 현대인과 뗄래야 뗄 수없는 함수관계를 가진다.

 

갈수록 술을 마시는 연령대는 낮아지고 성별의 구별도 사라져 남녀노소가 술을 마시고

 

휘청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은 건강한 사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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