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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宮

식물들이 살아가는 법

by 선 인장 2019. 7. 18.

 

 

가까이 간다는 건,

나의 음성을 들려준다는 것이다.

 

나의 숨결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오늘도 난, 나의 발자국 소리에 들뜬 화초들 몸을 좌우로 흔들고

 

반갑다고 손을 흔드는 밭으로 간다.

 

우리가 기르는 작물들은 대부분 자연계에서는 다른 잡초들에 비해 힘이 약하다.

 

잡초들은 거름을 주지 않고 해로운 곤충과 곰팡이를 막아주지 않아도 어느 곳에서나

 

발을 뻗고, 아무리 뽑아버려도 특유의 끈질김과 억셈으로 금세 자란다.

 

그러나 우리에게 의탁하는 대부분의 작물들은 사람이 돌봐주지 않으면,

 

다른 잡초들에게 치여서 자라지도 못하고 생존경쟁에서 도태되어

 

진작 지구상에서 사라져갈 식물들이다.

 

지구상에 인류보다 훨씬 먼저와 뿌리를 내린 이 식물들에겐 사람들이 강력한

 

외계인이었을 것이다.

 

발을 통해 어디든 갈 수 있고 독립된 손을 이용해 어떤 것도 할 수 있어,

 

주위를 제압하고 먹이사슬의 젤 위에 오른 사람이라는 외계인.

 

작물들에겐 그 외계인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작물은 이 외계인들에게 먼저 달콤한 과실을 내어줬다.

 

이 과실은 이 외계인들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외계인은 다른 잡초에 먹히지 않게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바이러스 등

 

곰팡이류를 방제도 해 주면서 정성껏 돌봐주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음해를 위해 튼실한 씨를 골라서 보관했다가 뿌리를 잘 내리게 땅을 파고

 

고른 다음, 거기에 새 등 날짐승과 곤충들이 먹지 못하게끔 싹을 트여 주고,

 

해마다 철마다 보호해 주었다.

 

이로써 식물(작물이란 이름으로 특별히 기르는 식물)들이 멸종하지 않게 되었다.

 

식물들 중 일부는 잡초란 이름으로 사람외계인들의 손길을 거부하고 자립하였다.

 

과실을 만드는 등의 수고로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 열매도 최소화하고 맛이 없거나

 

독을 품도록 하여 스스로를 보호하며 뿌리를 발달시켜 어느 곳에서나 뿌리를 활착하고,

 

궂고 좋은 땅을 가리지 않는 억셈으로 대를 이어왔다.

 

더하여, 씨앗에 솜털을 달아 바람을 통해 퍼져가고 새 등이 씨가 덜 여물 때에는

 

못 먹게 떫은맛을 내거나 독을 품어 개체를 보호하다가, 씨가 다 여물 무렵

 

당의정처럼 겉에 작은 달콤한 열매로 유혹하여 그걸 짐승들이 먹고 배설과정에서

 

퍼지게 하였다.

 

이로해서 작물도.. 잡초란 이름의 이름 없는 식물들도, 대를 이어 살게 되었다.

 

 

사람이 쉽사리 뽑거나 자르거나 말려 죽일 수 있다고 과연 사람이 식물보다

 

강하다 할 것인가?

 

우리가 손으로 뽑거나 끊어낼 때 아무소리를.. 고통의 소리조차 안낸다고,

 

어느 누가 식물을 무심하다 할 것인가?

 

어느 누가 식물을 뇌 없는 단세포 생명체라 할 것인가?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자.

 

사람이 아무런 도움 없이 한 자리에 서서 한여름 뙤약볕을 견딜 수 있는가?

 

아무런 도움 없이 한 겨울날의 북풍한설을 견뎌낼 수 있는가?

 

한여름 뙤약볕을 기꺼이 맞아들이고, 겨울날이 오면 지상부의 몸을 말리고

 

뿌리로 생명력을 저장하여 그 이듬해에 거뜬히 일어서는 힘!

 

그것이 우리 사람보다 훨씬 지극한 생명력이요, 강함일 것이다.

 

식물은 가장 먼저 이 지구상에 나타난 곰팡이까지 이용하는 놀라운 지능을 지녔다.

 

때로 곰팡이와 싸우면서, 때로 땅에 버려진 부스러기를 곰팡이를 통하여 분해하여

 

제 몸에 유익하게 쓰면서 오래토록 이 지구상에 가장 현자로 살아남을 것이다.

   

  


저 멀리서 제 주인이 걸어오는 발자국의 진동에 기뻐하고 반겨 맞으며,

 

들려오는 음성에 이파리 떨리는 감동으로 세포벽 열어, 아드레날린 샘솟듯

 

생명력 더욱 가열차게 끌어올리는 환희를 간직하는 식물!

 

주인님 다시 올 날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식물들의 순정이야말로,

 

사소한 이해에 쉬이 변심하는 사람이 배워야할 덕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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