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부터 수많은 전쟁사는 먹고사는 문제에 기인한다.
더 넓은 밭(농토)을 확보하고 거기에 농사를 지어서 바칠 농노들이 필요했으며,
또 다른 씨를 뿌릴 밭(여자)이 필요했기 때문에 갖가지 명분으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주변을 침범하고 죽이고 빼앗아왔다.
물론 영토를 지배하는 국가 내에서도 세금이란 이름으로 개인을 수탈해가지만,
자신의 안전을 담보로 한 계약관계로 볼 수 있으므로 논점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국가란 존재를 인정한 묵시적인 동의이니 말이다.
어쨌든 사람의 역사는 수탈의 역사인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다음은 주거문제이다.
근대화 현대화를 거치면서 위정자들은 주거공간에 대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한꺼번에 모인 사람들에게 효율적인 주거공간을 만들어 준다는 것은 도시기능을
유지하게끔 만드는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좁은 나라 좁은 구역 공간에 효율성만 생각다보니 우리나라는,
외국처럼 여유와 멋을 갖지 못하고 사각 진 공간을 누더기처럼 더덕더덕
붙여놓은 꼴로 집을 지어, 꽃도..나무도 별로 없는 삭막한 공간만 높아져갔다.
산업혁명과 함께 도시로 모인 사람들!
그들은 어디서 먹고 자며 살아야할까?
그네들에겐 남의 집 셋방살이보다 간섭 없고 자기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으며,
전기 가스 물 등의 생활편의를 갖춘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은 꿈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빚을 지게에 지고라도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아파트라는 건물 안으로
경쟁적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도시노동자들을 블랙홀처럼 흡수한 시멘트 벌집들!
거기엔 가축할 수 있는 동식물과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마당이 없었으니,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사람이.. 이웃이 적(敵)인 시대를, 왜 그러한지도 모른 채
맞이하고 당연시했다.
어찌되었던 그 답답함을 벗어나려 일부 사람들은 작은 아파트로 향하게 되고
그 작은 아파트, 부대낌이 적은 아파트를 빌라라 명명하였다.
그러나 빌라로 나간 사람들은 만족했을까?
아니다.
만족감은 점차 사라지고 결국 또 다른 감옥 안 임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젠 많은 사람들이 도심에서.. 이웃에게서 사람에게서 조금이라도
떨어진 한적한 곳에 터전을 마련하려 애를 쓴다.
그리하여 도심의 인근은 전원주택지로 각광을 받게 되고,
그곳으로 향하는 발길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나무와 숲 그늘을 찾아간다.
먹이를 물어 나를 밭은 더 멀어져도 그보다 더한 가치를 위해 오늘도 사람들은
분주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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