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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가기

아들에게 - 세번째 편지

by 선 인장 2011. 2. 15.

 

 

상일아,  다시또 날이 밝았구나.

 

아빠는 늦잠 즐길 새 없이 오늘도 여전히 바쁜척이다.

 

생각해보면 바쁜 일이 무에  있다고 그러는지  매번 서두르는 습성을 바꾸기가 힘들구나.

 

 

눈 많이 왔냐?

 

동북에 눈 폭탄이 떨어져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오늘도 복구의 손길이 분주하다고 하니

 

남쪽에 눈이 왔다곤 하나 배부른 소리밖에 안되겠구나.

 

그곳은 서북이라 눈이 덜 왔을것도 같다만,

 

그래도 이 시기에 특히 올해는 누구든 雪禍를 피해가기 힘든 처지라

 

니가 너무 고생스럽지 않을까를 염려하게 한다.

 

눈이 오면 추운대로 더위오면 더운대로 힘들어하고, 멀리 나가보지도 못한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아들임에 염려하는 마음 더 크다. 

 

잘 하고 있지?

 

오늘 분대별로 찍은 사진에 미소짓는 모습은 저번 때보다 건강하고 한결 여유있게 보인다만,

 

잘 적응하고 있는지.. 잠이나 잘 자고 있는지.. 가뜩이나 잠 많은 놈이 아침기상소리에

 

얼마나 기민하게 대처하고 구보에서 쳐지지나 않는지 항상 걱정이구나.

 

실은 아빠도 훈련병 시절엔 둔해서 기상시간마다 허겁지겁 모포 개고 연병장 가는 시간에

 

항상 쫓겨야만 했단다.

 

눈 내리던 논산의 야산기슭을 선착순 하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새록새록하다.

 

눈은 내리고 이마와 등엔 땀이 내리고 ㅎㅎ.

 

한번은 계속 선착순에서 밀리다가 먼저 한바퀴를 돌다가 온 애들과 섞이며

 

들어오는 바람에 선착순에서 면제되었던 기억도,

 

요령 없고 눈치 없는 아빠에게는 언제나 행운의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단다.

 

나 자신이 왜 이 자리에 있는건지를 생각할 겨를 없이 몰아붙이던 훈련은

 

나태와 자만과 이기에 물든 마음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

 

그렇다.

 

육체를 단련하면 할수록 마음도 강건해짐을 다시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러한 것이 우리 피와 살을 가진 동물의 숙명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즉 오늘 나에게 닥친 수고로움이 무서울까?

 

수고로움이 내 정신을 더욱 맑게 정화할테고, 지난 내 잘못도 돌아보게 할 것임에 

 

오늘 걷는 발걸음이 니 정신과 몸을 더욱 키울것임을 믿는다.

 

건강하거라.

 

어디에 있던 주위를 돌보고 살피는 은근한 빛의 존재로 살거라.

 

 

날이 풀려도 골목길에 다시또 쌓인눈은 쉽게 녹아들진 않는다.

 

그래봤자지.

 

그래봤자 얼마나 버티겠냐

 

멀리서 오는 봄의 기운을 느낀다.

 

봄의 새싹처럼 너의 희망이 솟아나길 바란다

 

 

-2. 15일, 아빠가 이곳의 봄기운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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