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꽃이 열려 거리마다 밤꽃향이 가득합니다.
비릿하면서도 달콤하고 상쾌하면서도 쌉쏘름한 내음을 맡노라면
괜히 가슴이 뜁니다.
아침부터 전신주 위를 깡총깡총 뛰며 우짖는 까치의 몸짓을 보고
괜히 오늘은 누가 멀리서 올 것도 같고,
잊었던 아니 잊고자 했던 사람이 다정히 웃으며 와 줄 것도 같습니다.
그 이름을 나즉이 뇌이다 보면 그리움은 하늘을 날아 그님이 계신 곳에
닿을 것도 같아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 피식 웃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 들녘에서 보리를 수확하고 보릿대를 태우는지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 오릅니다.
보릿대 태우는 연기는 하늘로 말려 올라가고 보리 알곡이 같이 타는지
구수한 냄새는 세상에 제일 맛난 연기임을 알게 합니다.
가까이서 맡아도 매캐하지 않는 연기.
일케 보릿대가 타면 본격적인 농사철입니다.
2모작을 하는 손길이 날마다 바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모꾼들을 모아서 품앗이로 오늘은 이 집 논, 내일은
저 집 논으로 첫 새벽같이 모를 심으러 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10시경에 나오는 새참 밥은 그야말로 꿀맛이었지요.
당신은 모 심던 논에 밥을 머리에 이고 와 봤을지..
새참 실은 리어커를 끌어 봤을지..
그냥 놀러 나와 봤을지 모르겠지만, 많지도 않은 농사에 모내는 날은
왜 그리 바빠 했던지요.
모내기 전에 한우쟁기로 갈고 물을 대어 써래질로 평탄해 해 놓은 논인데도
일꾼들이 오기 전에 나가서 논 여기저기에 모 잡기 좋게 군데군데 놓아두고,
일이 시작되어도 부족하지 않게 모를 여기저기 옮기는 일이며,
조금 더 커서는 모 줄도 잡고 지게로 져 나르는 일도 항상 힘들었었지요.
그 힘든 일도 새참으로 감자에 서대나 갈치찜을 해오면 허기진 배도 채우고,
잔칫날처럼 기분이 좋아져서 하루 해가 긴 줄도 몰랐습니다.
지금은 기계화가 되어 모판을 옮기는 일이며 모 심는 일도 다 기계가 하지만,
대신 젊은이들이 없어 들판은 늙은 농부의 한숨 소리가 경운기와 트랙터의
기계 소음에 섞여 들려옵니다.
그래도 서두르는 부지런함으로 1모작 논에는 벌써 모가 심어져 있고,
한 겨울을 잘 버틴 개구리 가족은 떼로 나와 거기가 제 마당인 양 밤마다
울어대는 통에 잠을 설칠 정도입니다.
겨울은 춥고 오래어 심장에 무리를 주더니 봄은 너무 빨리 왔다 가버려
개나리 진달래가 어느샌가 스러지고 철쭉마저 생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길 모퉁이 담 밑 장미는 연일 내리쬐는 햇살이 좋은지 벙긋 거리지만,
장미를 닮은 당신 모습도 그러한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세월이 빠릅니다.
철없이 보내버린 세월이 아깝지만은 아니하지만,
보내버린 세월에 충실하지 못했던 거 조금은 아쉬워집니다.
매사 잘 해보자고.. 이젠 지난날을 밑거름 삼아 실수 없이 해 가자고 자신에게
수도 없이 다짐 시키지만, 여전히 실수투성이의 삶을 살아가는 건 아직도 철이
덜 든 탓이겠지요.
철들지 않는 어른.
수없이 넘어져 찢긴 상처로도 철이 들지 않는 어른.
철이 들진 않아도 자연의 섭리로 자꾸 머리는 하애지고 몸은 무거워져만 갑니다.
사람을 피하여 자연 가까이 숨어도 사람들의 소음은 그치질 않아 세상은 시끄럽고,
마음 때로 둘데 없이 들녘을 홀로 걸어도.. 산길을 홀로 걸어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싫어도 사람이 그리운 때문이겠지요.
그렇습니다.
나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나를 믿어주고 나에게 다정한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사람 많은 번화가에서 팔짱을 끼어주던 그 사람이 그립고,
김이 나는 음식 앞에서 재잘대던 모습도..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예쁜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던 그 날들이 그립습니다.
이렇게 나는, 매양 그리운 것들을 그리워하면서 당신을 생각고 또 생각합니다.
당신이 내게 오는 날 흰머리 보이지 않게,
머리 빗어 올리고 입꼬리 올리는 연습도 해둡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늘은 언제나 맑음이고 언제나 부풀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