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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가기

52병동

by 선 인장 2011. 4. 9.

 

 

병원에 가보면 왜 그리 아픈 사람이 많은지, 아프지 않고 건강히 살고 있는 것 자체만으

로도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 수 있다.

병원 입구에서부터 짙어지는 소독 냄새, 병실마다 고통에 겨운 신음소리, 지지대에

줄줄이 달린 링겔병, 코 이마 팔목에 박힌 주사바늘들...

병문안을 가보면 어서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지고 괜히 바쁜척하게 된다.

평소에 그 많던 화젯거리는 어디가고 없는지 환자와 달리 나눌 얘기가 없어진다.

그냥 병원 생활이 견딜만한지, 어디가 아픈 것이며 퇴원은 언제 하게 되는지 묻고 나면

더 이상 나눌 얘기가 궁색해진다.

그 가기 싫고 잠시라도 머무르고 싶지 않은 병원에 다녀왔다.

 

 

이천십일년 삼월이십팔일.

안사람이 아프단다.

그동안 걱정할까봐 얘기 안했는데 한 2주전부터 아팠단다.

그 날은 안 되겠다 싶은 친구가 평소에 가던 개인병원에 데려갔는데, 의사선생 맹장이

곪아 터진 후  내장에 퍼진 것 같다며 종합병원 권유를 받았단다.

종합병원 의사선생 충수돌기염(흔히 말하는 맹장염을 의학용어로 그리 표현함)

진단 후 상태가 안 좋다며 서둘러 21시에 수술하기로 결정.

부랴부랴 병원에 도착 한 나에게 담당의사 설명.

면담은 30분 넘게 이어지고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에겐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직감했을 것이고 적잖이 불안한 시간이었으리라.

의사선생 말씀, “차트 설명 후 아무래도 큰 병원으로 옮겨서 수술해야 한다.

왜냐면 폐 쪽에도 이상소견이 보이고 혈뇨문제도 있다. 지금 상태로 백혈구 수치는

병마에 대항하기 위해 최대치로 올라가 있는데, 아닐 수도 있지만 암 일수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 전신마취하면 못 깨어날 우려도 있다.”

이 무슨 자다가 몽둥이 맞는 격이요. 마른하늘에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병실에 돌아와 딸과 함께 눈물범벅인 아내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맹장도 뭐 병이라고 그리 우느냐. 그리고 사람이 얼마나 멍청하면 그게 터져

곪을 때까지 방치했냐?” 등등의 고함소리에 8인실 병상에 할머니들 모두 쳐다본다.

차마 울지 못하고 그 침울한 분위기를 깨야하는 가장의 무게를 아내는 아는 걸까?

눈가에 고인 눈물을 언젠간 알게 될까?

 

 

수술 포기한 대신 급히 내어준 엠블런스가 어둠 속을 달렸다.

암것도 아닌 줄 알고 있다가 갑자기 엠블런스로 큰 병원에 후송되는 마음은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럴려고 엊그제 군대간 아들을 보고 왔다느니, 이럴 줄 알고 저번 주에 결혼식장에서

형제간들을 보고 왔다”느니 아내는 울음을 그칠 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큰형수(의형제인)가 함께 차에 타 집안 얘기며 며느리 흉에

아들 흉에 이런저런 말을 계속 이어져 비관된 분위기를 잡아주었다는 것이다.

조대 응급실은 병상이 남아돌지 않게 만원이었다.

간호사 하는 말.

“이런 일은 10년 만에 첨이라”고.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 모양이다.

그날 따라 환자들이 넘쳐 났으니 말이다.

혈관이 잘 드러나지 않는 체질의 아내에게 내과 외과 여기저기에서 10분 간격으로

피를 빼러 왔다.

혈관이 드러나지 않아 링겔주사 마저 여러번 피부를 찔러대고, 그 상태에서 피를

또 빼서 검사하겠다고 여기저기 피부를 뚫어대니 보는 마음이 답답하고 애잔하다.

피를 뺄 량이면 한꺼번에 많이 빼서 검사하면 될 일인데도 사람 바꿔 가면서 계속

피를 빼가자 꼭 실험물이라도 된듯하여 화도 났다.

바삐 움직이는 의사(대부분 인턴이나 레지던트 과정이겠지만)와 간호사들에게

앞으로 어찌 될 것인지 묻지도 못했다.

침상 여기저기에서 피를 흘리거나 의식이 없는 환자들은 계속 들어오고 그들이

내어 뱉는 신음소리와 너무 밝은 전등 아래에서 난 너무도 무기력 했다.

딸과 큰형수를 광주에 살고 있는 큰형수의 딸 집으로 등 떠밀어 보내고,

한참 후 의사의 회진.

“평소에는 야간에 1팀만 수술하는데 오늘은 환자들이 많아 3개팀 모두가 수술을

해도 밀려 있어서 언제 수술 일정이 잡힐지 모르겠단다.”

응급환자에게 수술 시간을 잡아주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할 일인가?

자정 10분전 답답한 마음에 발이 넓은 친척에게 혹 조대병원에 아는 의사가 없는지

부탁해본다.

알아서 그 시간에 무엇하랴마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일말의 희망을

찾으려는 몸짓이다.

물론 알아보겠다는 답은 들었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괜히 응급실로 복도로 화장실을 왔다갔다 하다 새벽 4시가 가까워지자 졸음이

쏟아진다.

침대에 엎드려 잠깐 잠이든 사이 의사가 왔다.

4시30분쯤에 시간이 비니 수술실로 올라가잔다.

반가운 일이다.

서둘러 수술실로 오르고 시간이 더디간다.

수술실 앞 플라스틱 의자에 기대어 졸다깨다 하다가 동녘이 밝아 오는데도

소식이 없다.

 

 

아내는 3시간 만에 실려 나왔다.

마취가 깨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나 “으으으..” 하는 신음소리가 그토록 반가울

줄이야.

아, 이제는 살았구나. 살아났구나.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반갑고 기쁜 것은 살다가 첨이네.

나 자신부터가 사람 북적이는 걸 싫어 하지만 나중 옷 갈아입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가 걸릴 것 같아 2인실로 들어갔다.

5206호실.

다행히 옆 침대에 사람이 없다.

옆 침대는 오후에 채워졌다.

아내는 발이 넓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교회 식구들. 친구들. 계원들...

일부러 얘기하지 않았어도 어찌들 알고 오는지 종일 위문객들이 찾아온다.

그러한 차에 내 사무실에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낯부끄러울 뻔 했다.

물론 본디 인덕이 없는 사람이 그러한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알리거나 하지도 않았지만 아내에게 남편의 처세술이 훤히 보일게 아닌가.

몇푼씩 걷어오는 봉투를 광주에 거주하는 막내직원에게 들려 보냈지만,

그나마 감사한 일이다.

‘돈 낼 때 좀 아까운 직원들이 있었겠다’ 생각하니 웃음도 나왔다.

그곳에서 큰 병원을 선호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먼저 복도가 넓어서 답답한 가슴을 종종 식힐 수 있고 편의시설도 깨끗하다.

단정하고 깨끗한 간호사와 의사의 옷차림.

귀찮을 정도로 30분마다 찾아오는 간호사들.

링겔이 무슨 성분인지 어떤 약들이 투입되고 있는지 물어도 일일이 대답해

주는 친절함.

의사도 주치의 담당과장 인턴의사들까지 자주 방문하고 경과를 보고 묻고

앞으로의 일정도 얘기해준다.

의문사항을 물어도 꼼꼼히 답해 주는 모습에서 이미 병원에도 친절교육이 이뤄지고

있고 남의 집 불 보듯 대충대충 해가던 진료도 정성이 가미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어찌 보면 배운 지식을 팔아먹는 일인데도, 그동안 남보다 더 배웠고 전문분야를 안다는

유세를 떨어왔던 게 사실이 아니던가?

대기업에서부터 시작된 고객중심 고객만족의 바람이 우리 회사에까지 불고 있으니

서비스가 전부라 할 수 있는 대학병원에서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이다.

 

 

잠보 술보인 내게 첫날은 아무 정신이 없고 바보가 된 듯 멍~하니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링겔이 다 되어 가면 벨을 누르거나 일어날 때 누울 때 일으키고 누이면 화장실에

갈 때 링겔 3개나 4개 달린 지지대를 끌어주는 일 외에는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금식을 하고 있는 아내 앞에서 보호자 밥상을 받아먹고 수시로 보조 의자에 자고

정 답답하면 복도 끝에서 끝까지 걷기 아니면 매점에서 물 사오고 자판기 커피 빼

먹는 외에는 달리 할 일도 없었다.

한가지 불편한 점이라면 수시로 바뀌어 들어오는 옆 침대와 그들이 오고갈 때 사람

들과 간호사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겨우 든 새우잠을 깨어 놓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술을 마실 수도 없고...

사무실에 부탁하여 금요일까지 휴가를 내 놓고 나니 차분해졌다.

답답한 것도 점차 익숙해져 가고 밥 먹을 시간이 기다려지곤 했다.

날은 금방 지나가고 나중 면회 온 사람들과 나가서 식사도 하고 술까지 몇 잔

걸치고 돌아오는 병실이 낯선 모습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리 살아온 느낌을 주었다.

금요일 아침. 담담과장의 회진 시간 월요일 오전에 퇴원 하겠다 하니 염증이 심해서

안 된다고 하기 고향 병원에 입원할 계획이라 하니 그러라고 한다.

아무래도 폐와 혈뇨문제의 답을 듣지 못하여 설명을 요구 했더니 고향에서 찍어온

시티는 해상도가 낮아 판독이 어렵다고 다시 찍잔다.

그 결과 퇴원은 화요일로 미뤄졌다.

월요일이 원체 바빠서 바로 판독치 못하고 오후에나 판독이 가능하고 그리되면

하루를 또 넘기게 된다는 것이다.

뇨 검사 결과 월경이 끝난지 오래지 않았거나 몸이 정상이 아닌 경우 자궁출혈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별다른 이상이 지속되지 않으니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한다.

일요일 날 다시 찍은 엑스레이와 시티촬영 결과는 나중 고향병원으로 옮긴 후

아내에게 들었다.

폐에 보이는 이상한 덩어리는 어릴 적 폐결핵을 앓거나 하면 그 치유 흔적이 그리

남게 되고 더 이상 진행되지 않으니 이상이 없는 거라는 진단을 내렸다 한다.

 

 

월요일 낮까지 지키고 있던 병상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무실 출근.

화요일엔 아내친구가 올라가 퇴원수속을 밟고 고향병원에 데려왔다.

재 입원하는 모습을 잠깐 본 후로 퇴근 후에 다시 본 병실은 8인 여자병실이라

온통 할머니들이 드러눕거나 앉아서 주사액을 맞으며 신음을 내어 뱉고 있었다.

의료실비보험이 병원비 대부분을 보상 해줄 테고, 일반화재보험 등이 그 차액을

보전할 것으로 보이고 이젠 실밥을 빼고 퇴원할 날만 남아 있다.

아, 아프지 말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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