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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가기

개와 고양이 그리고 인간

by 선 인장 2009. 9. 22.

 

개와 고양이는 오랜 세월 사람과 가까이 있었다.

 

개는 들판에 사는 늑대를 길들여 가축화 했다지만, 고양이의 조상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사람과 같이 살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말중 개가 들어가면 어김없이 욕이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

 

“개 같은 인생, 개 같은 자식, 어제 술 먹고 개 됐다” 등이 그러하고,

 

최근 모 광고카피에서 나오는 “집 나가면 개고생 한다”에서 보듯

 

개가 들어가면 전부 부정적인 이미지가 돼버린다.

 

평생 인간이 남긴 찌꺼기나 얻어먹으면서도 불평 없이 밤낮으로 집을 지키고,

 

죽어서도 자기 한 몸 기꺼이 내어주는 개의 입장에선 참으로 억울할 법도 하다.

 

사실 개만큼 주인을 위해 헌신하는 동물이 있을까?

 

그런데도 개 같은... 등의 욕이 생겨난 건 어떤 이유일까?

 

*

 

개는 어떤 종(種)이든 주인에게 순종한다.

 

먹이를 적게 줘도.. 거친 먹이를 줘도 불평하지 않으며 주인이 몽둥이를 들고 때리거나

 

발로 차도 눈 내리깔고 원망하는 눈빛하나 없다.

 

오히려 잠깐 고통스러워 하다가 금방 꼬리를 흔들고 자신을 박대하는 주인을 반긴다.

 

과연 개보다 지능이 높고 사회성이 있다 자부하는 인간이라면 이럴 수 있을까? 

 

더욱이 자식을 낳아도 젖을 뗄 쯤 주인의 돈벌이를 위해서 자식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농경시대를 거치면서 집에서 하는 일을 천시 생각하는 습성이 생겼다

 

그래서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남자들은 아직도 여자가 집에서 하는 육아나 가사노동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가 집에서 무얼 하길래 해놓으란 일도 않고 있는 거야?”

 

랄지 ”집에서 하루 종일 뭐 하길래 힘들다고 하느냐“ 등의 말로 호통을 치는 경우가 있다. 

 

사람한테 이럴진대,  하루 종일 집을 지키는 개에게 주는 점수가 높을 수가 없다.

 

하루 종일 집을 지키는 개의 역할을 인정해 준다거나 고마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뉴월에 늘어진 개 팔자’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식으로 그저 편히 먹고

 

노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개는 날이 더워지고 체온이 올라가면 더위를 식히는 방법으로 긴 혀를 밖으로 내밀고

 

헥헥대며 체온을 조절한다.

 

이 모습이 인간들 눈에는 우습게 보인 것 같다.

 

또 하나는 후손을 잇기 위한 교접을 할 때, 인간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아무대서나

 

교접을 함으로써 교양미에서  인정받지 못한 점도 있다.

 

또한 대소변을 가리지 않고 아무대서나 처리하며 숫컷일 경우 전봇대만 보이면

 

소변배출 충동을 느끼고 행하는 것도 볼쌍 사나운 모습이다.

 

거기다가 한 다리를 드는 모습이라니 푸흡...

 

**

 

그와 반면 고양이는 어떠한가.

 

역시 농경시대에 꼭 필요한 한 가지 역할을 함으로써 오랜 세월 인간과 함께 할 수 있었는데,

 

그 역할은 다름 아닌 농부가 애써 수확해 곳간에 쌓아놓은 양식을 축내는 쥐를 잡는 일이었다.

 

지금은 농경에 종사하는 인구가 적고 면적도 줄어들었으며, 쥐도 약물과 덫 등으로 잡음으로써

 

고양이의 필요성이 없어져가고 있다.

 

이제는 거의 애완용이 아니면 키우지 않아 인간이 관리하는 고양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고양이는 들과 야산으로 쫓겨났음에도 파충류와 조류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식욕으로

 

개체수를 늘려왔다.

 

농촌에서는 들녘 논둑과 야산, 도시에서는 쓰레기장 주위에서 먹을 것을 찾아내고 부패한 음식에도

 

배탈 한번 일으키지 않는 놀라운 환경적응력으로 그 수는 갈수록 늘어만 가는데,

 

결정적으로 고양이에게는 천적이 없어서 현대사회에선 골칫덩어리가 되고 있다.

 

이제는 밤낮없이 주차해둔 차량 밑에서나 지붕 창고 등에서 흔히 보이며,

 

차와 인적이 뜸한 시골일수록 차에 치여 죽어있는 흉측한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차가와도 태연히 도로를 건너는 모습은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서인지,

 

친숙함을 느껴서인지, '차' 라는 괴물체의 속도계산을 하지 못한 탓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제 고양이의 특징을 살펴보자.

 

고양이는 몸을 항상 청결하게 한다.

 

몸이 청결함으로 인간의 무릎에 오를 수 있고 안방에서 인간과 함께 기거할 수 있다.

 

까칠까칠한 돌기가 있는 혀로 수시로 자기 몸을 핥아 정갈히 하며 대소변도 모래 등의

 

땅에 처리한 다음, 그 위에 흙으로 뒤덮어 뒤처리를  깔끔하게 한다.

 

그리고 날렵한 몸매로 공중에 아무렇게나 던져놔도 균형을 잡고 스폰지처럼 부드러운

 

발바닥 근육으로 사뿐히 내려앉아 재롱을 피우는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무릎에 앉혀 놓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눈을 감고 “그르릉 그르릉” 하고 만족스러운

 

소리를 내며 감사의 뜻을 전한다.

 

특히 영특하게 생긴 갈색 눈망울의 검은자위가 빛에 따라 좁혀졌다

 

넓혀졌다 하는 모습은 얼만 앙증맞은가.

 

이 귀여운 고양이가 개와 다른 점은 충성심에 있다.

 

개는 한번 쥐어박아도 ‘깨갱’하고 아픔을 호소하면서도 꼬리를 흔드는 반면,

 

고양이는 자기를 때린 인간을 용서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얼굴이나 손등을 발톱으로 할퀴거나 밤에 쥐 대가리를 신발 앞에나

 

방문 앞에 나란히 진열해 놓아 복수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화해를 청하고 쓰다듬어 주려고 해도 한번 때린 인간을 따르지 않는다.

 

그 인간의 집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다른 인간의 집으로 가거나 창고 등 한대잠을 자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고양이에 빗대어서 속되게 말하는 것이 있다.

 

바로 검사와 기자와 고양이의 공통점이다.

 

이들은 자기를 건드리는 인간을 반드시 어떤 방법으로든(주로 무리를 모아)

 

응징한다는 것이다.

 

 ***

 

인간들을 두 종류의 동물로만 비유한다면,

 

우리 주변에는 개와 같은 인간이 있고 고양이와 같은 인간이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온갖 괄시와 천대를 해도 자기 주인을 위해 끝까지 헌신하는

 

순정파 인간이 있는가 하면, 어제까지도 자기의 상사이거나 형님일지라도

 

하나의 섭섭함이나 손해가 생기면 바로 냉정히 돌아서는 부류를 말함이다.

 

이 복잡한 사회에서 우리의 관념은 자기 경험이나 주관에 머물러 편협하기 때문에

 

고양이처럼 외모와 일처리 솜씨 등이 재빠르고 깔끔하며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

 

비위를 살살 잘 맞추는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개처럼 항상 마음속에 상대에게 존경을 품고 시키는 일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일을 해도,

 

어쩐지 미덥지 못하게 느껴지고 가치 없이 느껴지는 게 다분화된 사회일수록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도 같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한 사람을 쳐다보고 살필 겨를이 없는 바쁜 현대사회와, 자신에게만 잘해주면

 

악인이라도 곱게 봐지는 인간의 약점이 고양이과 인간을 원하고 만들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막상 그 상대가 힘이 없어지거나 영향력이 떨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아서는 고양이과 인간.

 

인생선배나 상사에게 가까이서 달콤한 말이나 선물로 비비기보담,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며

 

멀리서 상대를 존경과 연모의 정으로 바라보는 개과의 인간.

 

과연 당신은 개과의 인간인가?

 

고양이과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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