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땅 끝에 서다.
땅 끝으로 여행일정을 잡은 날 저녁,
설핏 든 잠결에 빗소리를 들었다.
우두두둑 . .
옥상을 적신 비가 관을 타고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
소리와 소리의 간격은 멀어도 노래의 한 음절처럼 반복되는
불규칙하면서도 규칙적인 낙숫물소리였다
빗소리는 고층 방충망을 뚫고 침입하는 모기를 막고자
또다시 침실 창에 덧쳐둔 모기장에도 막힘없이 들어와
자꾸만 감은 눈을 뜨게 했다.
새벽 2시반의 정적과 정적을 깨는 타악기의 미묘한 어울림을
즐기기엔 현실이 허락지 않았다.
여행일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앞에
창가를 서성이다 아침을 맞았다.
다행히 동녘이 밝아오며 비가 그쳤다.
물안개가 자욱한 야산이 희미하게 보였다.
조식 후 출발.
사구미해변과 송호해변은 비교적 한가하였고,
파도는 머언데 소식을 흰파도에 싣고와 해변에
전해주고 있었다.
휴가철이라 길이 막힐 것을 각오했으나 그다지 막히지 않은 길을
네비아가씨의 안내로 22km의 해안일주도로를 돌아 땅 끝에 도착했다.
바다는 해무에 덮여 아득한데, 불볕을 만난 매미들이 아주 신이 나서
활엽수 이곳저곳에서 사랑노래를 불러대고 있었다.
활엽수 나무가 차양을 만든 아래로, 튼튼한 나무계단이 ‘땅끝전망대’
를 오르기 쉽게 하였다.
해발 156m위에 20미터 높이로 세워진 횃불모양의 전망대에 올라
남해를 바라보았다.
해무가 짙어 먼 바다와 인근에 떠 있는 보길도 등 다도해를 다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맑은 날은 멀리 월출산과 제주도까지 조망이 가능하다고 한다.
관광 안내자의 말을 들으니 전망대를 동방의 횃불 형태로 만든 것은
이 앞 바다에서 해가 떠서 지는 곳이라 온 세상을 밝히기 위해서란다.
해는 좌측 완도바다에서 떠서 서쪽 진도로 진다.
이곳은 남해와 서해바다가 만나는 신성한 곳이라,
옛날 이곳을 지나는 배는 반드시 해신에게 풍랑을 막아주십사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조 때에는 선비들이 정쟁에 밀려 제주도나 완도 진도로 유배를
갈 때 이곳에서 출발 하였다 한다.
일순간, 임금님과 가족들이 있는 육지를 마지막 쳐다보며
눈물을 삼키고 배에 올랐을 선조들의 모습을 보는 듯 숙연해졌다.
그 아픈 세월이 유수히 흘렀건만,
아직도 국회의사당에 모여앉아 정쟁으로 헛지랄을 하고 있는
선량들이 유독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땅끝 !
태백과 노령이 남으로남으로 향하다가 바다에 막혀 더 이상
남으로 뻗어 나가지 못한 곳 !
그곳에서 남해와 서해는 만나 부둥켜안고 대양으로 향하고,
그곳으로부터 땅이 시작되는 곳 !
땅끝은 하나의 끝이자 새로운 출발지였다.
2. 두륜산으로
땅끝의 모노레일은 담에 타기로 하고 일행들은 서둘러 두륜산으로 향했다.
30여분을 달려 두륜산에 도착하니 점심 때. 산채비빔밥과 동동주에
도토리묵으로 허기를 채우고 케이블카매표소에 섰다.
다행히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1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다음
케이블카에 탈 수 있었다.
케이블카는 발아래 해송과 활엽수 수림 위로 1.6km의 행진을 시작했다.
내려다 본 수림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에 첨벙 뛰어들고픈 충동이 일었다.
두륜산케이블카는 국내 최장 거리를 자랑하며 한번에 승무원 빼고
50명까지 실어 나를 수 있고, 초속 3.6m 속도로 편도 7분가량이 걸린다.
케이블카가 중간쯤 올라가자 우리나라 지형을 한 논이 선명해졌다.
두륜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양켠에는 소사나무가 지천이었고,
등반객의 편의를 위해 넓은 나무 계단을 고계봉까지 만들어 놨다.
고계봉에서 내려다 본 숲의 풍경은 녹색물감을 이곳저곳에 풀어
놓은 듯 산림이 빽빽하였고 멀리 바다가 보였다.
그 바다는 뭍의 소식이 궁금한지 해무로 변신해 산을 슬금슬금
거슬러 올라와 나무와 사람들을 한번씩 쓰윽~ 만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산이 험하여 등산로가 따로 보이지 않았는데, 정상에서도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사람의 출입을 막아놓은 게 색다르고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음이란 언제나 좋다.
남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더운 날씨여도 팔을 감아 두르고
쉴 새 없이 밀어를 속삭이며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웃음을 짓는
연인들이 부러웠다.
붕 뜬 마음에 638m 고계봉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3. 청자도요지에서의 지갑소동
인근에 청자문화제가 열렸다기 잠깐 들렀다.
으레 그러한 곳이지만, 무슨 행사를 합네 하면 사람구경이다.
이곳저곳에 만들어 논 주차장은 이미 가득차서 교통경찰과
자원봉사자의 호각소리는 요란해도, 길가에 슬쩍 차를 세워두고
가버리고 그런 차일수록 연락처 하나 안 붙어 있기 마련이다.
오후의 햇살이 따가운데 명품관에 들러 눈요기 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나 같은 무식쟁이가 뭘 알랴마는 전시판매장에서 자기를 손톱으로
튕겨보면 아주 맑은 소리가 나고, 파란 듯 파르스름한 빛이 싫증나지 않아
토기로 이리 빚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한참 이동을 하던 중, 뒷주머니를 만져보다 깜짝 놀랐다.
분명 있어야할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아차! 소매치기를 당했구나.
순간 아득해지며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어디서 잃어먹었는지,
누가 어느 장소에서 내 지갑을 빼갔는지도 도통 알 수가 없다.
차량으로 돌아와 앉은 자리와 발판까지 살피고,
차량에서 내릴 때 빠졌을 경우를 가상하여 동선을 살펴봐도 보이질 않는다.
한편으로는 많은 현찰이 담기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핸드폰 메세지를 확인해보니 다행히 아직까진 누가 카드를 사용한 기록은
없다.
콜센터에 카드분실신고 후 사용내역을 알아봐도 다행히 불법사용은
없다하니 그나마 안심이 됐다.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키고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나니 주위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기까지 놀러 와서 나 때문에 마음 상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내가 갑자기 바보스럽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려왔다.
난 어디서나 사람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간격을 유지하는 습관이 있고,
누가 정면으로 다가와도 피해가며 아무리 복잡한 공간에서도
앞사람과 뒷사람과의 여유 공간을 확보해 놓는다.
인파에 무작정 떠밀려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에 내 자신이 떠밀려 다닌다는 것이 무척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 사람 많은 곳은 가질 않지만 말이다.
가만히 오늘 일을 되돌아본다.
그러고보니 케이블카 안에서 내 몸에 부딪혀가면서도 미안한
표정이나 말 한마디 없이 내 구두를 밟아가며 어린아이들을
내 앞으로 밀어 넣던 뻔뻔한 아주머니나 그 바깥양반이 나와
너무 가까이 있었던 것 같고,
케이불카에서 한꺼번에 내릴 때, 타려는 사람들이 길을 못 잡아 혼란
스럽던 순간 뒷사람에게 조금 밀린 느낌이 들었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어디 복잡한 곳에 갈 것 같으면 사전에 지갑에서 현찰을
빼내 따로 담는다거나, 지갑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둔한
뒷주머니에서 빼서 앞주머니로 옮겨 놓는다.
이러면 절대 소매치기 걱정은 없다.
근데 오늘따라 아침부터 이때까지 호주머니 한번 확인해 보지 않았고,
무슨 배짱인지 건망증 때문인지 앞으로 옮겨 담지도 않았으니
생애 처음으로 그 댓가를 치뤘는가 싶었다.
4. 귀 로
지갑은 지갑이려니와 일정이 있는데 예까지 와서 그러고 말수 없었다.
마량항으로 가서 팔딱거리는 어시장을 볼까하다가, 회진으로 가서 물회를
몇 그릇하여 불룩해진 배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지지 않은 해가 일행들을 다시한번 모이게 했다.
지갑은 결국 집에서 출발할 때 앉았던 쇼파 위에 떨어져 있어서
실소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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