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 이조년
나는 염문艶聞을 잘 탄다.
내가 유달리 염문을 잘 타는 이유가 있을건데 난 그 답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하게 미남도 아니고 키가 크거나 돈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님에도
염문은 종종 날 따라 다녀, 사람이 싫은 이유가 된다.
누구는 누구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네` 라는 소문은 때로 날 아주 곤혹스럽고
수치스럽게 한다.
이럴땐 사람의 이기심이 싫고 질투심이 우습고 어떤 동물보다 더한 편견과 오해가 싫고,
사람의 입이 밉고 이래저래 사람이 두려워지고 싫어진다.
근데 왜 유독 나에게만 그런 소문이 많은 걸까?
내가 사람들을 너무 좋아해서?
이성을 지나치게 좋아해 아무나하고 어울려서?
맘사랑 보다 몸사랑을 좋아하고 그런 목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이 많아서?
??
참 알다가도 모를 일.
어찌됐거나 거기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또한 분명 나의 언행에도 문제가 있었음이다.
이곳은 5만의 인구가 사는 조그마한 군(郡)이다.
군이라지만 도회지의 한 동(洞)의 규모이고 큰 동네의 하나의 읍에 불과한 규모이다.
그중 3분지1 정도가 환갑을 넘어선 사람들이고 어린 학생들을 빼고나면 경제활동인구
2만여명이 3개읍 7개면에 흩어져 살고 있다.
3개읍 중 2개읍은 인구수 감소에 따라 그 기능을 상실해, 이름만 읍이지 실지 면단위로
보면 된다.
직장이 하도 좋아 발령이 잦은 우리 회사 방침에 따라 1년이나 1년반마다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그 기간동안 주민들과 얼마나 가까이 지내고 얼마나 긴밀히 지내기에 서로 정이
들어서 사귀게 되고 정분이 나게 되는 것일까?
더욱이나 눈만 뜨면 보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그런 환경 속에서 말이다.
누가 누구의 부인인지, 친구인지 적인지, 누가 누구와 싸웠는지도 항상 드러나는,
동네일이 하나의 면내 일이고 군내 일이 되는 그런 작은 연못같은 곳에서 염문이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것도 한두군데도 아니고 두 곳 중 한 곳에서 말이 나오는 지경이니 참 내 팔자도
기구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가는 곳마다 나의 편함이나 이익 챙기지 않고 주위사람 챙기고 막걸리 값을 내도
누구보다 먼저 내 주머니를 털어왔음에도 뭐가 부족한 걸까?
주민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나 또한 한동안 맘이 아프고 그들이 벌금이라도
내지 않게 남의 일에 음료수까지 사 나르며, 합의 붙여주는 일이나 방식이 잘못된 것일까?
물론 나는 이성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의 형상을 하는 모두가 아닌 사람다운 사람, 사람의 향기가 나고 존경심을
느끼게 하는 사람은 내게 항상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러하니 내가 그런 사람을 반기지 않을 수 없다.
반면에 영~ 아닌 사람은 두렵고 무섬정이 들어서 가까이 하지 않는다.
마주치면 표정관리하며 응대하지만 겁이나 항상 그 자리를 도망치고 싶어한다.
이런 사람도 저런사람도 마주치면 그저 편안히 그러려니~ 하고 대하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현대인들의 특징과는 한참 동 떨어진 사고방식과 태도이다.
암튼 내가 가진 사람에 대한 이 무섬증이, 정이 가는 사람들하고만 친하려하니
다른 이들에겐 질시를 가져오기도 한 모양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옛날얘기를 좋아하여 또래들에게 얘기선생이었고,
지금도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맘이 통하는 사람들과 술 한잔을 앞에 두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얘기하기를 좋아한다.
남자라면 다들 한다는 군대얘기나 스포츠 얘기· 정치얘긴 나부터가 지루해 하고 싫어한다.
그 대신 그냥 사는 얘기, 살아가는 얘기가 좋다.
그렇다고 남의 흉이나 보고 뒷담화를 까는 일은 흥미 없다.
꽃이 피고 지는 일 , 나무가 자라고 곡식이 자라나는 일, 놀러가서 느꼈던 소감이나
에피소드 같은 건 항상 재미있어 한다.
그보다는 그 자신이 살아온 과정이나 가족얘기나 사람들을 어찌 대하고 살아가는지 등은
젤 재미있어 하는 부분이다.
"아, 또 나 몇살 때에는 말야~~ " "나 어릴 적 언제는~~ "
그 배고픈 시절은 못 먹어도 허기지는 줄 몰랐다가, 이리 개화된 세상에서 느끼는
정신적 허기에 대한 얘기라면 한없이 듣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심중에 있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이해관계나 상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과거를 하나하나 더듬어가는 고백같은 얘기이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좋아하는 습성과 많은 사람을 품어 안지 못하는 작은 가슴이 적을 만들고
시기와 질시를 만들어가는 건 아닐까?
짧은 지식으로 강의하기도 좋아하고 그러한 것을 하나의 보람으로 여긴다.
또 하나는 술을 좋아하고 노래하며 춤추기를 좋아하니, 좋아하는 사람들과 은밀한 파티도
좋아한다.
그러니 같이 어울리던 사람들과 염문이 날 법도 하다.
한번은 그 소문을 전해듣고 어찌나 흥분이 되던지 동네다방에 가서 "누가 나를 좋아해서
그런 소문을 내고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누구든지 원하면 다 만나 주겠다. 어떤 여자라도..
어디에서라도 다 만나줄테니 제발 입방정 좀 떨지 말라고 해라" 며 악을 쓴 적도 있다.
그 말들을 소문의 진원자가 듣길 원하면서 말이다.
물론 이건 어리석은 소치이다.
더한 말만 만들어 낼 뿐이지 '저 사람은 무고합네' 하진 않을 게 아닌가?!
더욱이나 그 염문의 상대당사자가 된 이에겐 얼마나 미안해 지는 일인가?!
괜히 나와 알았다가.. 친했다가 그런 염문의 당사자가 되었으니 날 원망하진 않는다
하더라도 나와의 만남을 호연好緣이라고 생각하겠는가?
그 사람은 그곳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입장이니 한동안 그러한 소문에 시달릴테고,
그 주변사람 누군가는 오랫동안 그 소문을 진실처럼 속으로 믿고 있을 게 아닌가?
'저 사람이 예전 누구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네~ '하고 말이다.
참.. 참.. 사람들이란........
도시에 살 땐 그런 일이 없었다.
하물며 윗층에 사는 이가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지낼 때가 많았다.
위아랫층 사람들도 당연히 나를 궁금해 하지도 않을 뿐더러 내 얘기를 누구에게
하지도 않는다.
전해듣는 이에게도 흥미를 끌만한 얘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그마한 곳에 살다보니 서로가 서로의 관심이 대상이 되고,
때론 아무런 생각없이..때론 그 사람을 못쓰게 하려는 의도로 말을 만들어 내고 만다.
그러면 마땅한 화젯거리가 없는 술자리동무, 고돌이동무, 목욕탕동무 등 모임동무들은 그것을
아주 흥미있게 받아들이고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간질거리는 입을 참아내지 못한다.
곧 그 소문은 재생산되어 순식간에 확산된다.
본디 소문이란 게 모르는 사람이 내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 그것도 자주 보는 사람이
내기 마련인지라 소문을 낸 사람도 그 안주거리였던 사람도 서로 얼굴을 보게 될 게다.
그때 소문을 낸 사람은 미안한 생각이 들게 될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마치 아무일 없었던 것 만나게 되는 게 다반사라 그 죄책감은 없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곧 자신은 자신이 소문낸 사람이 당할 고통쯤은 까맣게 잊어 버린다.
그리고 또 다른 소문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것이 자신은 주위사람들에게 관심을 끄는 일이며, 그 자신도 재미있어 하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염문을 피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항상 인상이나 북북 쓰고 다른 사람들에게 퉁명스럽고 차갑게 대해 볼까?
다른 이들에게 덕 볼 일에만 나서는 약삭빠름을 배워볼까?
나는 언제나 이 염문으로 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나이가 더 들어버려 남자다운 매력이 떨어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