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집애들은 사내애들의 저음에서 이성을 느끼게 되고,
사내애들은 계집애들의 부풀어오르는 가슴에서 이성을 알아간다.
우리 때 사내애들이 가지는 최초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은,
여선생들이 왜 화장실에 가면서 화장지 한두칸을 떼어가는가였다.
볼 일이 있으면 많이 떼어가야 맞을 것 같은데,
가끔씩 화장실에 간다며 떼어가던 몇칸의 화장지.
요즘에야 수세식이고 어느 곳이나 질 좋은 화장지들이 걸려 있지만,
옛날에는 시골학교의 화장실들이 대부분 푸세식이었고 화장지가 귀하여
걸어놓지 않으므로 자기 책상 위에서 몇칸씩 떼어가는 식이었다.
세상살이가 원체 험하여 기쁨보다는 슬픔이 많은 인간세상에,
그래도 남녀간의 사랑이 있어 세상은 살아볼만한 거라고 끊임없이 꾸미고 속이는
작가들의 의해 우리는, 이성에 대한 환상과 호기심을 극대화시킨다.
더욱이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사춘기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그후 청년기의 사랑, 거기에서 부터 모든 사람들의 비극은 시작된 게 아닐까?
여자는 호기심으로 순결을 잃게 되고, 남자는 탐욕으로 순결을 버린다.
어느 날 한 사무실로 한 남자의 꽃선물이 도착한다.
그는 매일 아침 그 시간에 꽃바구니를 들고 온다.
처음엔 특별한 이유도 없는 호의가 거북하여 한 구석에 꽃바구니를 두었다가
차츰 응접탁자에 놓게 된다.
삭막한 도심의 사무실에 꽃바구니는 또 다른 감흥을 준다.
처음엔 거부하고 경계하다가 어느 순간 기다려지는 게 사람의 마음인가보다.
오늘은 안 오려나 하는 기대감마저 갖게 된다.
최고급 세단에 말끔한 양복의 남자는 은행에도 같은 호의를 베푼다.
그러다 몇곳의 지점장들과 친숙해진 어느날 많은 신용대출을 받게 되고,
대출 상환기일이 오기 전에 사라져 버린다.
알고보니 그 차량마저 계약금만 주고 타고 다니던 차였다.
전형적인 사기꾼의 수법이다.
매끈한 외모에 최고급 차를 타고 다니며 부드러운 말씨로 다가와
처음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계속 베푸는 친절함이 그네들의 무기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들이 사기에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보여지는 것으로 신뢰감을 주고 작은 친절로 사람의 약점을 파고 든다는 것이다.
즉 사람이란 있어보여야 돈도 꿔주고 친밀감을 느낀다는 말이다.
둘러보면 우리 주위에 꽃 보석등의 선물 때문에 첨에 맘에 없던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는
여자들이 의외로 많음을 알 수 있다.
시골 총각들이 결혼을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가진 게 많아도 상대의 환심을 사는 선물을 할 줄 모르고 사치로 여겨 그저 밥이나
먹으려 드니, 여자들은 상대에게 호감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도시빈민이 결혼에 골인하는 경우도 거기에 있다.
대출을 내던 사채를 쓰던 간에 여자에게 꽃이나 보석 ·고가의 가방 등으로 환심을 사는 방법을
앎으로 여자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비단 여자뿐이겠는가?
사기를 당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물이나 공짜밥 때문에 오래지 않아 상대에게 그보다 수배 많은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가치를 바쳐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를 보자.
이 사회에서 남과 친해지려면 안면을 트고 밥을 먹든가 선물을 줘서 상대의 환심을 사야 빨리
가까와지는 법이다
거기에 사람의 약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받는 걸 좋아한다.
물품이나 사랑이나 존경까지도.
특히 나이 들수록 남자들은 탐욕스러워져 힘 없는 사람의 것을 자신의 지위나 힘을 이용해서
강제로 빼앗아 가지려든다.
원래 먹고싸야하는 숙명을 가진 사람이란 동물은, 상대가 주는 물 한잔에도 말이 부드러워지고
친숙함을 느끼는 존재이다.
결국 사람들은 남이 주는 선물이 공짜인줄 알고 받았다가 상대에게 구속된다.
공짜선물 공세가 늘어갈 때쯤 상대는 본심을 드러내게 된다.
선물을 받을수록 상대에 대한 경계심은 둔해지고, 오히려 더 받으려 하는 사람의 탐욕으로 인해
한꺼번에 더 많은 걸 잃게 된다.
이 간단한 진리를 모르면 평생 그 빚을 갚게 되기도 하고, 자신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한순간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