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제일 난감한 문제 중 하나는 H.R시간이었다.
회의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학급회의를 진행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였지만, 낯가림이 많은 사람이 부회장과 칠판 앞에 서서
그 주에 건의사항들을 받고 해결안을 정한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일이었다.
자신감의 결여로 자꾸만 작아지는 목소리, 관람하는 선생님과 관심없는 아이들의
눈치 보기 등 미숙하기 짝이 없는 진행이었다.
6년 중 5년을 그 역할을 해냈으니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날 좋아했던 부잣집딸 부회장은 지금 쌍둥이 엄마가 되어 잘 살고 있다지 아마?!
회장 부회장이 나중 커서는 같이 사는 꿈까지 꿨으니 얼마나 순진한 시대였던가!
초등학교 시절의 또 하나의 문제는 선생님들이 자꾸만 교단에 세워 노래를
시키는 일이었다.
아는 노래도 많지 않고 앞에 나서는 게 창피해 먼저 얼굴부터 붉어지는데
노래라니.....
성인이 되어 사회의 일원으로 있다 보니 의도치 않는 자리에 있게 되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소개하고 소개받는 일이 일상화 되었다.
근데 대개 ‘성격 좋네’ ‘사회생활을 잘 하네’ 하는 사람들에겐 대부분 진실성이 없었다.
일테면 만나자마자 나이는 어떻게 되고, 고향은 어디이며,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묻고
지금은 무슨 일을 하며, 나도 그 회사에 누구누구를 압네, 예전에 근무하고 갔던
고위직 누구와 친했네 하고 자기자랑을 해댄다.
난감한 얼굴로 그저 녜.. 네에.. 녜 그렇군요 하고 맞장구를 쳐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나게 되면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만났는지를
잊어버리고 다시 신상을 묻는 경우도 있었고, 처음 만난 사람 대하듯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날 나와의 만남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려면 왜 나에 대해 묻고,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악수를 하며 너스레를
떨었느냐는 말이다.
요즘 들어 블로그에 친구신청이 많이 들어온다.
내 블로그는 남에게 자랑할 만한 내용도 없는, 그저 심심할 때나 외롭다는 생각이
진해질 때 일상 정도나 적어나가는 일기장 수준이다.
근데 뭐 볼게 있다고 친구신청을 하는 것일까?
더욱이 검색흔적을 보니 열리는 첫 페이지를 봤을까 하는 정도이고, 내 글들이 공감이 가서
예전 것들을 더 찾아보지도 않은 상태이다.
거기에다가 예전 글에 한 줄이라도 댓글을 달아 공감지수가 있다거나, 닉네임을 기억하도록
방문이 잦았으면 말도 안한다.
처음 보는 닉네임에 처음 대하는 사람들이다.
허니 자꾸만 왜...? 하고 의문을 가질 수밖에.
한편으론 이 사회가 주는 외적 고통이 블로그를 가꿀 정도의 예민하고 여린 사람들을
아프게 하여 자꾸 자신의 동지가 필요한 걸까?
아니면 쓸쓸한 계절이 와, 서로 등이라도 다독여줄 온기가 필요한 걸까?
라고도 생각해 보았다.
아니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낙엽이 지는 계절이 아니라 만물이 깨어나는 시기.
이 사회가 주는 실망이나 일련의 사건들이 이름 없는 서민이길 자처하는
우리들에게 박탈감을 주는 정도까진 아닐 것이다.
그러면 뭐..?
알고 보니 친구신청을 한 그들은, 나뿐만 아니라 자신이 우연히 방문했던 많은
블로거에게 친구신청을 해 놓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의 홈에 방문자 수를 늘리거나 친구를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전부라고 보여 진다.
그래도 조심스러워진 것이, 친구신청을 거부 당해본 사람으로서 어느 누구에게는
자괴감을 줄 수도 있겠다 싶어 바로 당일 날 거부를 누르지 못하고 몇 번을
망설이게 된다.
내가 거부한 블로거들은 날 원망할까?
아니면 수많은 신청 중에 하나가 거부당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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