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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가기

아들 군대 가는 날

by 선 인장 2011. 1. 20.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다.

 

남녘의 바람으로도 녹이기 힘들만큼 한꺼번에 많이 내리기도 했고,

 

그 눈이 미처 녹을 새 없이 연일 강풍과 이따금 더해진 눈으로 제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골목길과 눈 쌓아놓은 도로 양 귀퉁이엔 눈얼음이 시루떡처럼 쌓였다.

 

도로는 사람의 발길이 뜸해졌고, 어쩌다 길을 나선 사람들은 저마다 장갑을 끼고

 

털모자에 두꺼운 점퍼로 무장한 모습이다.

 

 

 

아들 군대 가기 이틀 전 밤이 이슥한 거리.

 

어두워가는 거리를 눈이 휩쓸다.

 

눈발 날려 거리에 쌓이는가 싶으면 어디선가 나타난 회오리바람 쌓인 눈 쓸어가고,

 

가로등마저 춥게 느껴진 날 가까이 지낸 분들이 송별회를 열어줬다.

 

짧게 깎은 머리 때문인지 어리게만 느껴진 아들에게 대한의 남아로서 언제나 당당

 

할 것과 수모와 부당한 지시에도 인내를 당부했다.

 

다음날 아침 목욕탕에서 아들의 등을 미니 아직도 제 몸 하나 추수리지 못해

 

언제 목욕을 했는지 때가 천지다.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이 어린애를 군대에 보낸다고 생각하니 짠한 마음이 든다.

 

어찌 병영생활을 이겨내려는지 염려스런 마음뿐이다.

 

남녘의 끝인지라 당일 입영하기 힘들기도 하고 서울 식구들의 성화 때문에,

 

이틀 남겨두고 오전에 길을 나서 오후 늦게 서울 식구들과 만나 만찬을 가졌다.

 

길을 가도.. 돌아도 그곳이 그곳인 아파트 숲과 사람과 불빛천지인 서울에서

 

하루를 더 지내고 화요일 아침 306보충대를 향했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답답한 정체는 촌사람을 답답하고 지루하게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쉬임없이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몇몇 사람들을 빼놓곤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들이다.

 

기다림...

 

아, 도시사람들은 기다리는 일에 아주 익숙해 있구나.

 

길은 서울 외곽을 벗어나면서 풀려서 강변을 달려 의정부에 도착했다.

 

허허벌판에 세운 듯 별 볼품도 없는 도시.

 

이제 막 개발을 한 신흥지역처럼 휑한 곳에 건물이 몇 채 서 있고 차량과

 

사람들의 행렬만 가득하다.

 

군부대 앞에 이르니 전자시계며 깔판을 파는 장사치들이 길을 따라 양쪽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저마다 물품을 팔겠다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사람과 차가 엉켜 북적이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군부대 주차장에 주차하고

 

동반 입대하는 아들친구네를 만났다.

 

크고 작은 근처 식당엔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 앞에 줄을 서 있고,

 

한곳을 들어 가보니 앉을 자리조차 없다.

 

하는 수없이 한참을 시내로 걸어 나와 생선탕을 먹었다.

 

인덕도 없는 사람이 남 좋은 일은 잘해서인지, 없던 손님들이 우리 일행이 앉자마자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어디가나 손님 없는 집도 나만 가면 손님이 줄줄이 이어져 이따금 실소하곤 한다.

 

본인은 정작 실속이 없으면서도 남을 위한 일에 나서기 좋아하는 팔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군부대 앞 길 노변은 아직 녹지 않는 눈길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밟아

 

윤을 내놨다.

 

px에서 전자시계를 사서 채워주고 연병장에 집결했다.

 

한 사람당 서너명씩의 가족친지들이 붙어 연병장은 인산인해다.

 

연병장 스텐드에 일찍 자리 잡았다.

 

모처럼 날이 풀려서인지 연병장 스탠드 지붕위엔 동안 쌓여있던 눈이 

 

물방울되어 연신 쓰레트 지붕을 타고 흐른다.

 

이젠 이곳에 아들을 놓아줘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는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해놓았건만 아내는 고개를 돌리고 연신

 

눈물흘리고 곁에서 딸이 그걸 훔쳐내고 있었다.

 

쓰레트 위를 녹아내리는 눈-물처럼 아내의 눈물도 그리 싸악 녹아들어 아픔이

 

남지 않길 바랬다.

 

나라고 어찌 슬픔이 없겠는가마는 나라도 굳건해지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여서

 

아들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수많은 인파를 스텐드 쪽으로 집합시키더니 장병들을 따로 집합 시키지 않고

 

환영식이 거행됐다.

 

애국가와 군가(진짜사나이)와 부대장의 격려사를 끝으로 장병들이 하나둘

 

부대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눈가에 눈물이 언뜻 비치는가 싶더니 인파속으로 사라져간 아들의 모습은

 

이내 보이지 않았다

 

누군들 대한의 아들이 군대에 가질 않겠는가마는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아프기만

 

다.

 

아직 덜 여문 아들을 떼어놓는 부모의 심정이야 말해 무엇하리.

 

아들의 아들이 장성하기 전 통일이 되어 다신 아들의 눈에 눈물 고이질 않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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