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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가기

이 사회를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고 살아간다는 건.

by 선 인장 2010. 5. 3.

 

 

 

 

 

 

이 사회는 어중간히 정신을 차리고 살려고 하는 사람에겐 가혹하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이야 인심도 쓰고 양반인양 거들먹거리며 살지만,

 

이 사회에서 힘을 얻지 못한 서민들은 항상 2중 3중의 고통을 안고 산다.

 

 

 

어느 곳에서 싸움이 났다고 하자.  

 

 

없는 사람은 “왜 없는 사람을 건드리냐”며 막무가내로 고함치며 흉기를 

 

 

휘두르며 위력을 과시한다. 

 

 

먼저 잘못을 누가 먼저 저질렀는지도 필요치 않다.

 

 

먼저 잘못해 놓고 시비를 걸어 왔대도(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막무가내로 나가는 사람 앞에선 옳고 그름이 소용 없다.

 

 

안되겠다 싶어 같이 악다구니를 쓰거나 멱살 잡히고 뺨 맞다 못해

 

 

방어차원에서 상대의 멱살을 잡았거나 뺨을 올려붙였다.

 

 

이런 경우 누가 잘못일까?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헷갈려 할 필요도 없다.

 

 

답은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

 

 

둘 다 잘못이다.

 

 

왜 둘 다 잘못일까? 

 

 

상대에게 맞다 하는 수 없이 나도 한때 때렸는데 그것이 잘못이란 말인가?

 

 

남자들이라면 이런 자문을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 역시 답은 '법이 그래서 그렇다'이다. 

 

 

뭔 법이 그런다냐?

 

 

그것이 어떻게 법이여? 하고 묻고 싶은 사람들에게 난 그 분노를 삭힐 수 있는

 

 

답을 주지 못한다.

 

 

형법에는 정당방위와 정당행위가 있다.

 

 

그러나 폭행이나 상해부분에 있어서 정당방위나 정당행위는 너무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건장한 성인들의 싸움에서 일방이 상대방을 100대를 때려서 자기도

 

 

딱 한 대를 때렸다. 

 

 

이런 경우에도 정당방위는 성립하지 않고 같은 쌍방이 되어서 벌금을 물게 된다.

 

 

상대방이 벌금을 더 낼 수는 있겠으나,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구속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같이 우세를 사고 정신적 육체적 재산적 고통까지 당하게 된다.

 

 

이 사회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회사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야 벌금만 내면

 

 

그뿐일 테지만,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그 회사에 알려지면 그 회사 내에서도 

 

 

품행이 방정치 못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거나 징계를 당하는 등의 2차 불이익을

 

 

당한다.

 

 

그러니 양심과 정의지심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해도 자꾸만 위축이 되어가는 것

 

 

같다.

 

 

 

 

어느 버스승강장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혼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런 경우에 보통 사람들은 인상을 찌뿌리게 된다. 

 

 

그리고 용기 있는 남자가 훈계를 한다.

 

 

그러나 그 학생이 대든 경우도 생각해 보자.

 

 

2~3명이 모여 있으면 애들도 겁이 없어진다.

 

 

“에이씨, 아저씨 갈 길이나 가세요” 랄지 “아저씨가 담배 사 줘 봤소?”라고

  

대드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이 어린자식들이 어따 대고 그러냐고 손찌검을 했다고 가정하자.

 

 

그때 그 아이가 112에 신고를 한다.

 

 

그리고 폭행을 당했으니 어서 와서 자신을 때린 사람을 잡아가라고 한다.

 

 

그런 경우 어찌 처리될까?

 

 

당연히 훈계과정에서 대든다고 손찌검을 한 어른이 처벌된다.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조서도 받고 나중 벌금도 내야 한다. 

 

 

우리는 흔히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한다.

 

 

도덕 중에서도 반드시 지켜야할 것을 명문화 시켜놨다는 의미일 게다.

 

 

그러나 정말 이런 경우라면 법이 무얼 위해 존재하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곳은 농촌이라 대부분 누구하면 안다.

 

 

그러나 애들이 자라나서 조금 큰 경우는 뉘집 자식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다행히 “너 누구 아들이지?” 하고 선수를 치고 들어가면 수긍을 하고

 

 

리를 안 내릴 수 없으나 누구 아들인지 잘 모를 때는 훈계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 애들하고 싸웠다는 오명을 쓰게 되고 애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나중 법적인 제재까지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동네나 이웃 동네에서 못된 행태를 부리는 애들이 어른들이 

 

 

혼을 내서 그런 못된 행태를 잡아갔다.

 

 

그러나 도시화 핵가족화 되면서 동네에 어른들이 없어졌다. 

 

 

어른들이 없어지고 질서가 무너지니 모든 게 법적인 처리를 하게 된다.

 

 

동네에서 싸우는 사소한 일까지 법을 끌어 들이면서 사회는 각박해지고

 

 

불신의 벽은 높아갔다.

 

 

이렇게 인간은 인간을 스스로 파괴해 가면서 스스로 외로워져 간다. 

 

 

힘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분쟁을 피하려 자꾸만 높은 곳에 집을 짓고, 

 

 

사람을 고용해서 자신의 울타리를 만들어 궂은 일을 피해가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가진 것 없다는 것을 무기로 함부로 산다.

 

 

웬만큼 아파도 힘들어도 가족 생계를 위해 이 악물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은 높은 분들에게 무시 당하고, 막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城을

 

침해 받는다. 

 

 

아, 이 사회를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고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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