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땅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눈 이후 보이지 않던 눈이 갑자기 펑펑 내려 금방 도로에 쌓였다가 녹고,
녹은 땅에 다시금 쌓이곤 했다.
큰형님 발인 날.
운구행렬 위에 내린 눈은 벽제화장장에 더 소복이 쌓이고,
오열하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화장이 되어 한줌의 유골로 남아서 분당 메모리얼파크 안식처
가는 길까지 계속 따라왔다.
촌에서 상경하여 오직 먹고살려고 죽도록 일한 죄밖에 없는 사람이 그렇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아직은 세상을 등지기엔 이른 예순여덟해!
뭐가 그리 급했는지, 재활의지를 불태우다 갑자기 서둘러 하직을 하고 말았으니,
아연해진 가족형제들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삶과 죽음이 이리 가깝고 허망한가!
복도 참 없는 양반이다.
재작년에 늦게 얻은 며느리가 이쁘다고 팔짝팔짝 뛰면서 춤추며 노래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손주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이제 세상에 보람을 가질만 하니 그만 세상을 떠나다니...
고통 없이 갔지만, 얼마나 한이 됐으면 끊긴 숨이 다시 이어지고 이어지고 하다가
저 세상으로 갔다.
시골 버스 안에서 500원 동전 하나를 주워 앞좌석부터 끝 좌석까지 누가 흘렸는지
묻고 다니던 순박하고 바보 같은 형!
보기에 답답해서 “그 돈 내거여”하자 안심하고 돌려줬다고 일부러 주인행세를 하던 마을분이
소문을 내어 다 알게 되었다.
어린나이에 상경해서 동가식서가숙하며 겨우 가정을 이루고 치열한 삶을 살다가,
자신의 3세가 눈앞에 있거늘 그 걸 못 보다니 큰형은 바보였다.
작년에 어머님을 여의고 해가 바뀌어 또 큰형님을 보내게 되니,
그저 사는 일들이 허망하고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꿈인 듯도 싶고, 남의 일인 듯도 싶다.
복잡한 감정들을 정리하고, 살아남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내내 생각 중이다.
한 배에서 나와 각기 다른 곳에서 살면서 소원했던 형제애를 최근 더욱 느끼고,
무뚝뚝한 양반이 볼 때마다 잡은 손을 안 놓더니 이렇게 가버리다니...
이제 큰형님이라고 부를 이 없으니, 그저 안타까움만 더해간다.
1952.11.15 나서~ 2019.02.13.오전6시에 소천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