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적으로 남도 사람들은 속정이 깊다.
그래서 조그만 은혜를 받아도 오래토록 기억하며 사소한 일에도 곧잘 감동한다.
그러나 다듬어지지 못한 말투와 세련되지 못한 몸짓이 때로 거칠어 보인다.
그릇으로 말하자면 유약을 바르지 않고 대충 구워놓은 초벌구이 그릇이나
장독대의 장독처럼 쓰임새에 맞게끔만 대충 만들어 놓은 투박한 모습이랄까,
꾸밈이 없고 직설적인 화법이나 몸짓이 도회지 문화 속에 살아온 사람의 눈에는
거칠게 보이기도 한다.
내가 이곳 남도의 끝에 자리를 잡으면서 맨 처음 느낀 것도 그러한 것이었다.
어릴적부터 흙과 풀을 만지고 하루에 버스가 두 번 왔다가는 벽촌에 살아온 나도
도회지 물을 조금 먹은 탓인지 도무지 적응이 안되는 일들이 많았다.
그 중의 하나는 식당 문화였다.
인구 5만이 안 되는 작은 군단위 마을에 어려운 손님을 대접할만한 썩 괜찮은
음식점은 없었다.
그런대로 손님을 모실만한 곳이라면 방이 몇개 구분되어 있는 횟집이랄지
복어집이랄지 하는 정도이지 고급 음식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집은 없었다.
그 중 분위기 괜찮다 싶은 고기집은 큰 홀에 방이 서네개 구분되어 있어 요행이
방을 차지한 날에는 밖의 왁자지껄한 소음을 피해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였다.
일테면 그곳에서 작은 모임이나 회의를 하기엔 좀 그렇고 허기를 떼우는 정도로만
사용되는 서민 음식점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어느날 어느 식당에 밥을 먹으로 갔다.
낮 시간대라서인지 한가해 보이는 식당.
주인과 일하는 아줌마는 주방에서 설겆이 중이다.
분명 문을 열면 사람이 오는 기척을 느꼈을텐데 아무런 말이 없다.
뻘쯤해진 나, 주방에 대고 인사를 건넨다.
나: 안녕하세요?
주인: 예
.
.
.
(더 이상 말이 없음)
나: 여기 주문 안 받나요?
주인: 뭘 드실건데요?
나: 여기 곰탕되요?
주인: 예. 조오기(턱으로 홀내를 가르키며) 아무데나 앉으세요.
곧이어 일하는 아줌마로 보이는 사람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그러더니 물컵을 ‘탁 탁’ 탁자에 내려 놓는다.
당연히 물이 튀고 탁자와 내 옷을 적신다.
일하는 아줌마, 당황하거나 미안하다는 표정이나 말이 없다.
조금 있다 음식을 내어 오는데 또 반찬그릇을 ‘탁 탁 탁’ 놓는다.
그러려니 하고 일행과 대화를 나누며 먹고 난 뒤
나: 여기 커피 있어요?
주인: 입구에 있응께 빼시오.
나: 이쑤시개는요
주인: 거기 어디 있을것이요.
나: 예~
이게 뭔가.
이렇게 되면 막상 내 돈 내고 먹으면서 마치 죄인된 심정이 된다.
그렇다면 식당에 가면 이리 얘기해야 할 것인가 ?
“오늘따라 하필 이 집에 와서 신세를 졌으니 대단히 죄송해요”
“담부터는 절대 안 올테니 오늘만 봐주시오” 하고 말이다.
물론, 이것이 모든 식당에서의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식당들의 행태가 이러해서 정말 놀랐다.
그래도 주인은 좀 나은 편이어서 그리 무뚝뚝하진 않는데,
종업원들은 손님이 와도 본체만체요 왜 왔느냐 식이다.
그 뒤 어쩔 수없이 식당을 자주 이용하면서 불쾌한 마음은 좀 누그러졌지만,
한동안은 가기 싫을 때가 많았다.
한편으로 종업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왜냐면 손님이 더 온대서 주인에게 수당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할 일만 많아지니 귀찮은 것이다.
그것을 우연한 기회에 말을 했더니 전직 교통부장관을 지내던 이도
같은 심정이었는지 처음엔 불쾌한 심정이 들었지만,
어찌보면 이해못할 일도 아닌지라 자신은 그렇게 하는 일하는 아줌마에게
오히려 팁을 준다고 한다.
팁이라야 2~3천원이지만, 그것을 주는 이유는 일하는 아줌마에게 조그만 보람을
주려는 의도에서라고 한다.
그 분 말이 " 일하는 아줌마의 일당이 2만5천원~3만원인데, 나와 같은 사람이
열사람만 있다면 하루 일당이 과욋돈으로 들어오지 않는가, 그러면 손님들이
반가울게 아닌가"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여자 일로 식당 일처럼 고달픈 일도 없을 것이다.
하루 종일 설겆이에다가 음식 상 차리고 치우고 다시 반복해 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자신도 돈 많은 남자, 잘난 남자 만나 살았으면 남의 밑에서 눈치 보면서 남이
먹다 남은 찌꺼기나 치우며 살겠는가?!
이리 생각하면 동정의 여지가 있다.
그래서 어느날부터 인가,
나는 식당에 가면 일하는 아줌마들에게 팁을 주는 습관이 생겼다.
손님이 오면 불평하지 말고 반가운 마음이 들라고 말이다.
* 더하는 말
이미지는 이곳에 한창인 억새(갈대 아님, 갈대와 억새는 구분됨)와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 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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