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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가기

초상(初喪)

by 선 인장 2011. 6. 30.

 

계절이 제 선로를 이탈한 올해에는 유난히 사람들이 부대낀 것 같다.

 

원래 나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더라고,

 

아직은 더 세상빛을 볼 사람들이 맥없이 쓰러지곤 한다.

 

최근 일주일이 멀다하고 주위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해  부조하기 바쁘다.

 

 

장례식장에 가보면 살아있는 사람들은 자기네끼리 인사를 나누고 정담을 나누는

 

장場이 되어 있다.

 

술과 음식이 있고 모처럼 만난 반가운 얼굴들이 있으니 어찌 그러지 않을 텐가.

 

나,  옛날 코흘리게 시절엔 동네에 초상이 나면 좋았다.

 

그날은 동네잔치날이라 삶은 돼지고기를 양에 차진 않지만 솔찬히 얻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네 방앗간 공터 앞에 차일이 쳐지고 상주와 가족들이 꽃상여를 부둥켜 안고

 

울다가.. 울다가 지쳐 혼절하는 사이에도 산 사람들은 음식에다 술에다 모처럼

 

배를 채웠다.

 

상주의 슬픔 앞에서 음식이 주는 기쁨을 맛 보았던 것이다.

 

속 없는 나는 자꾸 아부지 곁에 가서 뽀짝거리면 아부지는 앞에 있던 접시에서

 

돼지고기를 몇 점을 얼른 손에 쥐어 주시곤 하셨다.

 

그리고 눈치를 하면 방앗간 뒤에서 때꼽낀 손으로 친구들과 나눠 먹느라 입 주변이

 

번들번들거리곤 했다.

 

그때에는 대부분 집집마다 검정 돼지 한두마리쯤은 키우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많은 손님을 접대하려 장정 몇사람이 동네에서 가장 큰 돼지를 잡아서 삶아

 

내오는 식이었다.

 

지금도 난, 세상에서 젤 맛난 고기가 하얀 비계 많은 삶은 돼지고기인줄 안다.

 

오전내 곡소리가 나다가 덕석 위에 놓이던 음식들도 떨어질 때쯤

 

본격적인 장례절차에 들어간다.

 

음식을 나눠 먹은 동네 장정들이 상여를 들쳐 메면, 소리꾼은 상여 위에 타서

 

상여의 방향을 정한다.

 

꽃상여 운구는 풍경을 손에 든 전문소리꾼의 구슬픈 만가輓歌로 부터 시작된다.

 

소리꾼이 "이제가면 언제오나  북망산천이 어디멘고" 하고 선창을 뽑으면

 

상여꾼들이 "어허영차 어허야~어허넘자 어허어"로 화답해주며 상여는 천천히

 

고인이 평소 다녔던 동넷길을 돈다.

 

상주와 가족들은 구슬피 울며 그 상여 뒤를 따르다가 동네 입구를 떠날 때,

 

여자들은 상여를 못 따라오게 만류한다.

 

혼절하는 상주와 가족들을 부축하고 몇몇 사람이 상가로 돌아가고,

 

상여는 미리 파 놓은 야산무덤으로 향한다. 

 

여자들이 상여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건 전래 풍습으로 매장하는 모습을

 

여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려함인지, 여자들이 감정표현이 더 강하므로 매장하는

 

무덤 앞에 혼절하거나 매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사전 차단하려 함인지

 

아니면 그 둘 다 인지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친구형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평소 건강에 자신있다고 큰소리 치며 술도 잘하시던 분이,

 

작년 7월 갑자기 위암말기 판정을 받고 버티다가 1년만에 세상을 떠난것이다.

 

위암말기면 통증이 엄청날텐데도 이상하리만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단다.

 

며칠전까지 항암치료로 헬쓱해진 얼굴로 사무실에 출근하던 분의 갑작스런 죽음.

 

주위사람들이 염려해도 자신은 자연식하며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 이겨낼거라

 

장담하던 분인데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셨다.

 

하루종일 정신적 공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멍해져 있다가 나중 찾은 상가.

 

어린시절에 좋았던 상가가 이젠 무섭고 싫다.

 

하는 수 없이 찾아가지, 앉기도 싫고 그곳 음식도 싫다.

 

요즘은 상주나 가족들도 예전처럼 섧게 울지는 않지만,

 

사람들로 북적인 상가는 여전히 잔치집이다.

 

이야말로 죽은 자가 산 자를 먹여 살리는 이치인데,

 

망자는 그 모습들을 지켜보고나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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